초미니 女변ㆍ반팔 셔츠 男변 "제발 개념 좀…"
서울의 한 대형 로펌 변호인단은 몇 달 전 '시간 매너'를 위해 수십만원의 택시비를 썼다. 이들은 울산지방법원의 오후 2시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같은 날 오전 김포공항에 갔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하필이면 짙은 안개가 껴 비행기 운항이 취소됐다. 비행편 생각에 자동차를 가져오지도 않았을 뿐더러,공항에서 전력질주를 한다고 해도 버스터미널 버스 시간에 맞추기도 불가능했던 상황이었다.

당황한 변호인단은 부랴부랴 상대방 변호인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기일 연기를 요청,간신히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막상 재판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수백억원대 규모의 중요 소송이었기 때문에 변호인 없는 재판이 진행될 경우 불이익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들은 서울부터 울산까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울산지법까지 전력질주하니 나온 택시비는 50만원.그 와중에도 10만원을 깎은 후 법정에 뛰어들어가니 재판이 막 시작된 상태였다. 수십만원 택시비 투혼을 발휘한 이들은 결국 승소해 성공보수 수천만원을 받았다.

변호사들에게도,소송 당사자들에게도 자세와 매너가 승소의 첩경 중 하나다. 예의를 지켜 재판부에 좋은 인상을 주고,변호사와 당사자들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을 넘지않아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다 매너를 잘 지키는 건 아니다.

◆"미니스커트? 매너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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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은 옷차림부터 매너다. 세상이 변했다 해도 아직은 '캐주얼'한 옷매무새에 눈살을 찌푸리는 법조인들이 많다.

여름만 되면 M판사의 눈에는 못마땅한 변호사들이 속속 들어온다. 양복을 잘 갖춰 입은 것까지는 좋은데 넥타이는 생략한 변호사들이 가끔 법정에 출몰하기 때문이다. M판사가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변론하는 젊은 변호사였다. M판사는 "요새 젊은 사람들이야 편하게 입을 수도 있겠다고 이해해보려 하지만 솔직히 다른 재판부 판사들도 썩 반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못마땅해했다. 그는 "법정에 드레스코드가 있지는 않지만 콤비 차림도 어색해보인다"며 옷차림 매너를 계속 강조했다.

요즘은 덜하지만 과거에는 여자 변호사들의 옷차림에도 '검열'이 심했다. 10여년 전 한 여성 변호사는 법정에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고 나왔다. 이를 보고 불편해하던 한 나이든 남성 변호사는 변호사회지에 글을 기고했다. '법정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오는 여자 변호사가 있는데 법정 매너가 아니지 않냐'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로 그 여자 변호사는 미니스커트 대신 바지를 입고 법정에 나왔다.

◆"울분에 북받쳐서…" 법정 소란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지난 17일 열린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후보매수 사건 첫 공판.공판이 끝났지만 판 · 검사와 변호사들이 아직 퇴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갑자기 "곽노현은 자폭하라"고 외쳤다. 법정 경위는 재판장의 지시에 따라 그 남성을 증인석에 앉혔다.

재판장은 "조용히 하라는 거 안들렸나. 소란스럽게 하면 감치한다고 밖에 써 있는 거 안읽어 봤나"라고 캐물었다. 그 남성이 "제가 울분에 북받쳐서…"라고 항변하자 재판장은 "이야기하라고 안했다. 내 이야기 들으라고 했다"고 자른 뒤 "원칙적으로 감치 재판을 해서 유치장에 가두게 돼 있는데 그렇게까지는 안하겠다. 앞으로 법정에 나오지 말라.그래야 증인이나 판 · 검사,변호사들이 마음 편하게 이야기한다. 한 번 봐드리는 것이다"며 그를 보내줬다. 지난 준비기일 때도 곽 교육감의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고 "힘내라"고 응원하는 등 소란을 일으켜 재판장이 비슷한 경고를 한 바 있다.

막무가내로 자기 주장만 하는 당사자들도 문제다. 지난해 언니 부부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다 내쫓긴 할머니가 불만을 품고 매일 언니 집을 찾아가 괴롭히자 언니가 접근금지 가처분을 낸 사건이 있었다. 언니와 동생은 둘다 변호인을 쓰지 않고 직접 나와 변론을 했다. 이들은 감정이 격해져 서로에게 "이 ××년아" 같은 욕설을 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담당 판사는 "재판에서는 판사 말을 잘 듣는 쪽이 이긴다. 이렇게 욕하고 소리 지르시면 안된다"고 달랬다. 그럼에도 두 할머니는 방청객들에게까지 하소연하는 소동을 벌였다.

◆"당신,내 부인이랑 무슨 관계요?"

화목한 가정을 꾸려온 한 개인변호사는 몇 년 전 '불륜남'으로 몰릴 뻔했다. 그가 수임한 사건의 여성 의뢰인이 문제였다.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더니 사건 내내 자주 전화를 걸어 사건 진행 상황을 점검했을 뿐 아니라,사건이 끝난 후에도 가끔 저녁 시간에 전화를 해 시시콜콜한 법률상담을 청했던 것.변호사는 귀찮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옛 의뢰인이라 적당히 전화를 받으며 응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와 아무 생각 없이 받았던 그는 한 분노한 남성의 고함을 들어야 했다. "당신,내 와이프랑 무슨 사이야!"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찬찬히 '복기'한 끝에 그는 문제의 남성이 여성 의뢰인의 남편이란 사실을 알았다. 최근 부인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여긴 남편이 통화 목록을 뒤진 끝에 자주 통화한 기록이 남은 자신을 불륜 상대방으로 지목하고 전화한 것.여성 의뢰인이 휴대폰 번호를 '000 변호사'가 아닌 그냥 '000'으로 저장해 놓는 등 오해살 만한 상황을 만들어 봉변을 당한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K변호사도 무례한 의뢰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수사가 왜 장기화되나","소환은 언제할 거냐"는 등 변호사 권한 밖의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요구 사항은 끊이지 않기 때문.그는 "전관인 만큼 의뢰인의 기대치가 높은 것은 이해하지만 도에 지나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고 했다.

이고운/임도원/김병일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