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에 꿈과 희망 줬는데…" 파란만장한 삶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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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신드롬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전 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아쉬움을 넘어 슬픔과 충격,공허감을 호소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는 마치 가까운 친구나 가족들이 유명을 달리한 것처럼 슬픈 감정들이 넘쳐나고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트위터에 "그의 죽음을 접하고 생각을 깊게 하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 많은 분들의 추모사를 읽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고 썼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 느끼는 이런 공감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잡스 신드롬'이라는 말로 요약하고 있다.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과 인간적인 모습,죽음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강력한 카리스마와 기업가로서 탁월한 역량 등이 어우러지면서 일반인들의 연민과 감정이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1) 스토리가 있다
그는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입양돼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에 방이 없어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고 음식을 사기 위해 5센트짜리 빈 콜라병을 모았다"고 할 정도다. 힌두교 사원에서 1주일에 한 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 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다는 사연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자신을 낳아준 생부와의 화해도 끝내 하지 못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떠올리는 것 같다"며 "그의 죽음으로 다시는 그런 꿈을 꿀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 인간적 동질성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장 친한 친구를 속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1974년 게임회사 아타리에서 게임 개발 용역을 맡았을 때 잡스는 5000달러의 보수를 받고선 실제 일을 다 한 워즈니악에겐 700달러만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잡스는 또 1980년 애플을 상장할 때 친한 친구이자 창업 멤버인 빌 페르난데스에게 주식을 단 한 주도 주지 않았다.
황상민 교수는 "야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잡스는 결국 평범한 인간이구나'라는 동질감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3) 청년층 감정이입
잡스는 오리건 주의 리드컬리지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뒀다. 대학 중퇴자였지만 애플과 픽사를 창업해 큰 성공을 이뤘다. 취업난과 생활고 등을 이유로 미국 영국 등에서조차 시위가 격화되는 상황 속에서 잡스가 보여준 성취는 소외 계층과 청년 실업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은 다른 유명인의 죽음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르다"며 "불행과 역경을 헤치고 스스로 꿈을 이룬 인물이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4) 강한 카리스마
그는 강하고 영민했다.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카리스마가 철철 흘러 넘쳤다. 눈빛도 형형했다. 질시의 대상이 아니라 외경스런 존재에 가까웠다. 회사에서 그와 마추진 직원들은 긴장해 제대로 말을 못했다고 한다. 직원 사이에선 'I'm steved'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단장은 2005년 MP3 플레이어의 하드디스크를 플래시메모리로 대체하는 문제로 잡스와 담판을 벌였던 기억을 이렇게 전했다. "기싸움이라면 나도 자신 있었으나 그의 깐깐한 눈빛과 거침없는 말투는 날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그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
(5) 초인적 몰입
2003년 췌장암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스티브 잡스는 수술을 한 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후 그는 2007년 아이폰,2010년 아이패드 등을 잇따라 출시해 대히트를 쳤다. 죽음의 공포마저 그의 천재적 영감과 상상력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끊임없이 'No'라고 하며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몰입을 보였다. 구자철 한성 회장은 "잡스 사망 소식을 들으면서 모차르트의 죽음과 천재의 요절이 생각났다"며 "살아있을 때 이미 신화였던 그는 죽음과 함께 전설이 됐다"고 말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