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음악은 동일한 예술적 감수성에서 출발한 것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음악을 들으며 미술관을 순회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이번 주부터 독자들을 음악이 흐르는 명작의 갤러리로 안내한다.


“물럿거라.귀인 행차시다.” 소문의 신 파마(Fama)가 오늘따라 유난히 부산을 떤다.쌍나팔을 불며 동네방네 귀인이 왔다고 소문을 내면서 돌아다닌다.그것도 이탈리아에서 마르세유까지 먼 길을 마다않고 말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법석을 떨 만도 하다.정말 유럽 최고 명문가의 여인들이 그것도 세 사람이나 행차했으니.세 여인 모두 토스카나 공국의 메디치가 출신이다.배 위의 레드 카펫을 밟고 있는 가운데 여인이 프랑스 왕 앙리4세의 왕비로 간택된 마리 데 메디치다.그 오른편의 검정색 원피스 차림을 한 여인은 토스카나 대공작 부인이고,왼편은 왕비의 친언니로 만토바 공작부인이 된 엘레오노라 데 메디치다.

이들을 영접하는 건 푸른 색 망토를 걸친 기사와 남녀 시종들이다.금빛 붓꽃이 장식된 기사의 푸른색 망토는 프랑스 왕실의 상징이다.아마도 그는 프랑스 왕실의 특사임에 틀림없다.세 여인 왼편에는 또 한명의 기사가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고 있다.철갑 위에 걸친 상의의 십자가 문양으로 보아 그는 바티칸 소속의 기사로 보인다.세 여인의 행차에 하느님과 교황 성하의 가호가 함께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귀인들을 영접하는 건 이들만이 아니다.배 아래에는 피렌체에서부터 동행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트리톤 둘과 요정 셋을 거느리고 왕비의 무사 도착을 기뻐하고 있다.그들의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왕비의 입국을 환영하는 의전장면과 어우러져 화면에 축제분위기를 돋운다.

혹자는 무슨 뜬금없는 얘길 하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마리 데 메디치라는 역사적 인물을 설명하다가 난데없이 파마니,포세이돈이니 하며 신화적 인물을 들먹이는 건 무슨 꿍꿍인가 하고 말이다.진정하시라.이것은 다름 아닌 루벤스의 ‘마리 데 메디치의 마르세유 입항’이라는 그림을 두고 한 얘기다.
신화와 역사를 캔버스 위에 겁없이 비빈 책임은 루벤스에게 있다.미국의 낭만주의 화가 워싱턴 앨리스턴이 말한 대로 이 바로크의 거장은 정말 대단한 거짓말쟁이였다.구린내 나는 현실을 신화의 포장지로 둘러 명품을 만들어내는 그의 솜씨에는 존경의 염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그림만 보면 주인공인 마리 데 메디치는 성스럽기 그지없는 프랑스의 왕비인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그녀의 일생을 살펴보면 이게 얼마나 침에 발린 거짓말인지 알 수 있다.뽀얀 피부에 훤칠한 키로 외모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에 걸맞은 지성을 갖추지 못했던 이 메디치가의 여인은 판단력이 부족해 늘 주변 사람에 의존하곤 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부터는 언니 엘레오노라에 의존하다 스물다섯에 앙리4세와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남편은 10년 뒤 광신적 가톨릭 신자에게 암살되고 만다.아들인 루이13세가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아 섭정으로 권력을 잡은 그녀는 프랑스 역사상 최대의 트러블 메이커였다.이탈리아 출신의 콘치니와 그의 부인을 중용한 그녀는 신교와 구교 사이의 반목을 부추키는가 하면 프랑스에 적대적인 스페인에 딸을 출가시키는 등 남편 앙리4세가 반석 위에 올려놓은 평화체제를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다.

패착의 클라이맥스는 성년이 된 아들 위에 여전히 섭정으로 군림한 것이었다.결국 그녀는 리슐리외를 업은 아들에게 일격을 당해 블루아 성으로 유폐되고 이후 망명,복권을 거듭하다 1642년 망명지인 쾰른에서 객사하고 만다.오죽하면 소설가 발자크가 마리가 한 행동은 모조리 프랑스에 독이 되었다고 분개했을까.

그러나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살펴보면 이런 거짓말의 실체를 꼭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마리 데 메디치가 군림하던 시대는 예술이 종교와 세속 권력의 주구 역할을 한 바로크 시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예술가로 출세하기 위해선 군주를 찬양하는 재주를 만천하에 과시해야 했던 시대가 아닌가.박식한 인문적 지식을 갖춘 루벤스는 그 시대 군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작품 역시 마리 데 메디치가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과거를 가리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선전 도구로써 주문한 21점짜리 연작 중의 한 점으로 마리에게 회심의 미소를 선사한 역사화의 걸작이다.

바로크 예술의 매력은 거짓과 진실,과장과 절제 사이의 외줄타기에 있었다.그 거짓과 과장을 굳이 매도할 필요는 없으리라.루벤스 덕분에 회화는 현실과 신화적 상상력을 결합함으로써 예술이 뛰놀 울타리를 무한대로 넓혀 놓았기 때문이다.근대 화가들이 루벤스의 ‘우아한 거짓’에 진 빚은 그 깊이와 넓이를 헤아리기 힘들만큼 깊고 넓다.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마리 데 메디치의 마르세유 입항’은 이탈리아 출신 새 왕비의 프랑스 입성을 축하하는 일종의 의전행사를 묘사한 그림이다.루벤스는 그런 경사스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소문의 신의 팡파레와 바다의 요정들의 율동감 있는 움직임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물론 왕실의 위엄있는 의전행사인 만큼 그것은 절제된 율동감이다.그런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분위기를 절묘하게 버무린 음악으로 헨델(1685~1759)의 조곡 ‘왕궁의 불꽃놀이’를 들 수 있다.

이 음악은 1749년 4월27일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맺어진 평화조약을 축하하기 위해 런던 그린파크에서 열린 불꽃놀이 축제에서 연주된 곡이다.당시 헨델은 이 행사의 음악감독을 맡았다.이날 불꽃놀이는 진행자의 실수로 불발로 끝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음악은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헨델은 바로크 시대의 피날레를 장식한 음악가지만 교회와 세속권력에 봉사했다는 점에서 루벤스와 함께 바로크 기운을 공유하고 있다.
‘왕궁의 불꽃놀이’는 루이14세 시대의 한 재능있는 요리사의 안타까운 최후를 다룬 영화 ‘바텔’에 삽입되기도 했다.주인공이 태양왕을 위해 야외에 준비한 밤의 스펙터클 장면에서 이 화려한 조곡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진가를 발휘한다.바로크 시대의 장중함과 화려한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챙겨볼 만한 영화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