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K리그 A프로축구단 주전인 G선수는 지난해 6월 B축구단과의 경기에서 져주는 조건으로 2000만원을 받았다. 그는 이 가운데 1000만원을 불법 인터넷 사설 스포츠토토(사설 토토)에 베팅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B구단 C선수의 "스포츠토토 배당 외에 사설 토토에 베팅하면 환급률이 더 높다"며 "이번에 발을 빼지말고 재미를 보자"는 은밀한 유혹에 선뜻 베팅에 나선 것.하지만 승부조작 모의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아 G,C선수는 투자한 돈을 모두 날렸다.

사례2. 부산 사하동의 군 제대 복학 대학생 김모씨(27).평범한 대학생이던 그가 친구의 권유로 불법 사설 스포츠토토 도박을 시작한 것은 지난 3월.처음에 재미 삼아 1만~2만원 단위로 투자했다 고(高)배당에 당첨돼 120만원을 땄다. 이때부터 그는 베팅액수를 20만~30만원으로 늘렸다.

이후 미국 프로야구(MLB)와 프로농구(NBA)를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일과가 되면서 아르바이트 직장에 출근해선 졸기 일쑤였다. 오후엔 국내 야구,축구 경기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실시간으로 휴대폰 문자나 전화를 이용해 베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설 토토에 중독돼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이미 '사설 토토 폐인'이 된 그는 최근 2학기 등록금을 날린 뒤 고금리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국내 프로축구 승부조작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설 토토'가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는 물론 대학생,심지어는 10대 청소년들 사이에까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무제한 베팅할 수 있어 '적은 돈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일확천금의 달콤한 유혹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제한 베팅,고배당 유혹

현재 국내에서 스포츠토토 복권을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곳은 ㈜스포츠토토가 유일하다. 국내외 축구,야구 등 30~50개 스포츠 경기 중 2~10개를 골라 승패를 맞히거나 경기 점수를 예측해 배당을 받는 스포츠토토는 2001년에 시작됐다. 이를 모방한 유사 게임은 모두 불법이다. 그러나 스포츠토토는 한 번에 최대 10만원밖에 베팅할 수 없고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한국농구연맹(KBL)의 경기 등 제한된 경기에만 베팅할 수 있어 대박을 노리는 도박 마니아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사설 토토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사설 토토 사이트는 베팅 금액에 제한이 없어 대박을 노리는 이들이 쉽게 빠져든다"고 말했다. 종목도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와 유럽챔피언스리그(UEFA) 축구 등 전 세계 스포츠 경기에다 스타크래프트 등 e-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스포츠토토와 달리 두 경기를 묶어 베팅할 경우 한 경기의 승패만 맞히면 배당을 받기 때문에 당첨 확률도 올라간다.

이일호 스포츠토토 오즈운영팀장은 "스포츠토토에선 평균 75%대인 환급률(배팅 금액 가운데 이용자에게 배당으로 돌려주는 금액)이 사설 토토에선 85~90%에 달하는 데다,세금을 낼 필요도 없기 때문에 마니아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수'는 사전 차단

사이트 운영자는 사법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전화 면접과 회원 추천을 통해 정회원을 모집한다.

사무실과 서버는 해외에 두고 베팅 금액을 받는다. 당첨금을 지급할 땐 대포통장과 대포폰을 사용한다. 사이트에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해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인터넷 주소(IP) 등을 추적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300만~500만원을 주면 사이트 개설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보통 한 달에 150만~250만원 정도를 주고 사이트 관리자를 고용해 운영한다. 사이트만 개설하면 들인 비용의 수십~수백 배를 손쉽게 벌 수 있다. 불법으로 운영하는 터라 세금도 내지 않는다.

몇몇 업주들은 큰 돈을 따는 선수급 회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아예 삭제해 다시는 사이트에 접속할 수 없게 하는 식으로 수익을 극대화한다. 운영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큰 돈을 잃으면 사이트를 폐쇄한 뒤 다른 사이트를 열어 영업하는 얌체족도 늘고 있다.

◆시장규모 3조원 넘어…단속엔 한계

투자 대비 수익이 엄청난 사설 토토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신고된 불법 사설 토토 사이트는 총 7951건.2007년 40건에 비해 무려 200배 가까이 늘었다.

사설 토토가 이처럼 확산되자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6월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불법 사이트를 단속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하는 등 규제에 나섰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강력한 의지 없인 불법 사이트를 뿌리 뽑는 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불법 사이트 운영자 대부분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고 5~10개의 사이트를 개설해 절반 정도만 운영하면서 적발되면 곧바로 나머지 사이트를 통해 영업을 재개하는 등으로 단속을 교묘하게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연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지도감독팀장은 "현재 500~1000개의 불법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트의 매출 규모는 3조4000억~3조7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 사설 스포츠 토토

합법적으로 한번에 최대 10만원을 베팅할 수 있는 스포츠토토와 달리 베팅 금액에 제한이 없다. 종목도 국내 스포츠 경기와 미국 프로 야구,농구뿐 아니라 e-스포츠까지 다양하다. 스포츠토토와 비교해 환급률과 당첨 확률이 높고,최대 22%에 달하는 배당에 따른 세금도 내지 않는다. 휴대폰 문자와 전화를 통해 간단히 베팅이 가능하지만 불법이다.


김우섭/하헌형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