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하나에 의지해 천 길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는 번지점프.이 과감한 스포츠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으며 대중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왜 뉴질랜드 퀸스타운이 세계 최고의 번지점프 명소가 됐을까요.

#성인식에서 유래된 스포츠

번지점프는 남태평양 바누아투의 팬테코스트 섬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성인식에서 유래했습니다. 섬 청소년들은 성인식을 통과하기 위해 발목에 번지라는 나무줄기를 묶고 10m 높이의 나무 탑에서 뛰어내리며 자신의 담력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 모험적인 성인식은 서구인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고,1979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모험스포츠클럽 회원 4명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에서 뛰어내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번지점프를 대중화한 사람은 뉴질랜드인 A J 해켓이었습니다. 그는 1987년 110m 높이의 에펠탑에서 번지 점프를 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바누아투 사람들이 사용했던 번지 줄기 대신 좀 더 안전한 소재를 고민한 끝에 라텍스 고무로 된 튼튼한 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에펠탑에서 뛰어내린 건 이 줄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벤트 홍보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퀸스타운과 번지점프의 만남

해켓은 뉴질랜드 남쪽에 위치한 자신의 고향 퀸스타운에서 '해킷-번지클럽'을 결성，카와라우강 다리 중앙에 버려져 있던 철교에 43m 높이의 번지점프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988년 세계 최초의 번지점프 기업 '에이제이 해켓'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퀸스타운은 번지 점퍼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 됐습니다.

2009년 퀸스타운 인구는 1만70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한 해 동안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은 170만여명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 80%가 외국인 관광객이고,젊은 관광객의 60%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러 옵니다. 관광객이 몰려오다 보니 이 지역에만 1200여개의 회사가 생길 정도로 비즈니스가 활발합니다. 번지점프，제트보팅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 회사는 물론 술집，카페，숙박업소，여행사 등의 회사들도 성업 중입니다.

#지역민의 풀뿌리 기업가 정신

퀸스타운은 어떻게 해서 세계 어드벤처 투어리즘의 수도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을까요.

첫째，브랜드 측면에서 퀸스타운은 익스트림 레저 스포츠의 메카로 확실히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번지점프，제트보팅，화이트 워터 래프팅，스카이다이빙이 퀸스타운의 레저스포츠 '빅4'로 손꼽힙니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들，웬만한 자극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도시가 퀸스타운입니다.

둘째，위험을 감수하며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풀뿌리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퀸스타운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선 해켓이 번지점프를 처음으로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심이 얕은 강에서도 탈 수 있는 제트보트를 처음 발명한 사람도 뉴질랜드 남섬의 농부인 빌 해밀턴이었습니다. 앨런 멜홉과 해럴드 멜홉 형제는 1970년 쇼트오버 협곡을 따라 내려가는 제트보팅 코스를 개발,'쇼트오버 제트서비스'라는 회사를 설립해 인기를 끌며 1993년 주식시장에도 상장했습니다. 1970년대에 멜홉 형제가 제트보팅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어드벤처 투어리즘에 뛰어드는 뉴질랜드 사업가들이 줄을 이으며 도시를 활성화했습니다.

#협업체 구성과 사업 영역의 확장

셋째，퀸스타운은 서로 싸우지 않고 협업을 통해 공존했습니다. 퀸스타운의 여러 레포츠 기업은 1996년 어드벤처 투어리즘 마케팅 전문 회사인 '퀸스타운 어드벤처 그룹'을 공동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출혈 경쟁을 하기보다는 기업 모두에 이익이 되는 관광 패키지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고안한 것이죠.이는 각 서비스가 중첩되지 않고 차별화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객도 패키지를 통해 가격을 할인받으며 다양한 모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넷째，퀸스타운에서는 사계절 내내 각종 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사이클링，산악자전거，카약，제트스키，승마，요트，스노클링，스쿠버다이빙，서핑 등을 수시로 즐길 수 있습니다. 봄에는 산악자전거，여름에는 스쿠버다이빙이나 서핑을 즐기던 도시가 겨울에는 남반구 최고의 스키장으로 변신합니다.

#휴식의 천국 퀸스타운

다섯째，퀸스타운은 타깃 고객을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가 아닌 사람으로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퀸스타운은 어드벤처 투어리즘의 천국이기는 하지만,조용하게 휴가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걷는 트램핑，호수 크루즈，와인농장 방문，골프，낚시 등 비명을 지르지 않고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산 정상의 레스토랑에서 퀸스타운 경치를 내려다보며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고，헬리콥터로 퀸스타운 주변 캐니언 지역을 구경하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세계가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때에도 퀸스타운 관광산업은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인구 1만7000여명의 퀸스타운은 주민，사업체，일자리 증가와 지역 내 총생산 증가 등 여러 면에서 뉴질랜드의 다른 도시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산악이 많은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도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그 성장 공식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시점에서 퀸스타운의 사례는 더욱 눈에 띕니다.

정리＝이주영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ng.com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mjkim8966@hanmail.net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시카고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SK그룹 근무.더콘텐츠컴퍼니 대표， 유달리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저서=‘로하스경제학’‘커져라 상상력 강해져라 마케팅’‘성공하는 기업에는 스토리가 있다’‘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시티노믹스’ 등
△역서=‘깨진 유리창 법칙’‘B2B 브랜드 마케팅’‘지식경제학 미스터리’‘트래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