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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고지전', 생존본능만 남은 '전쟁 괴물' 들

"수혁(고수)이가 그랬어.우린 빨갱이랑 싸우는 게 아니라 전쟁이랑 싸우는 거라고."

나이가 어린 임시 중대장 신 대위(이제훈)의 이 대사는 많은 사실을 함축한다. 그가 언급한 수혁은 계급이 자기보다 낮은 중위지만 나이는 많은 부대의 실질적인 리더다.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신 대위는 어떻게 초고속으로 승진했을까. 그는 의무실에서 왜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맞아야만 할까.

이런 의문이 풀릴 때쯤 영화는 감춰진 진실을 드러낸다. 전쟁의 대의와 명분은 사라졌다.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본능만 존재할 뿐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말못할 짓을 저지른다. 그들은 '전쟁 영웅'이지만 동시에 '전쟁 괴물'들이다. 그러나 상당수 관객들은 "그 상황에서라면 나도 그랬을 수 있겠다"고 공감한다. 드라마가 잘 짜여졌고 인물들의 심리도 제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장훈 감독의 '고지전'(사진)은 6 · 25전쟁을 다룬 영화 중 하나의 수확이다. 영화는 전쟁이란 명분과 목적 아래 시작되지만,곧 생존이란 자체 메커니즘에 따라 작동한다는 주제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그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는 수혁이나 신 대위 같은 군인들은 전장의 주인공으로 그려진다. 그렇지 못하고 명분에 사로잡힌 군인들은 신임 중대장처럼 죽거나,방첩대 출신 강 중위(신하균)처럼 동료들을 위협에 빠뜨린다.

이야기는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5개월 전쯤,방첩대 강 중위가 동부전선 에록고지 악어중대에 배치되면서 시작된다.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이곳에서는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됐고 아군이 적과 내통한 증거가 입수됐다. 강 중위는 그곳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 수혁과 신 대위,북한 사투리를 쓰는 상사(고창석),음주가무를 즐기는 중사(류승수) 등을 만나며 악어중대의 비밀에 접근한다.

140억원의 거액을 투입한 대작답게 스펙터클한 전투 신이 백미다. 실제 불이나 민둥산으로 변한 경남 함양에서 촬영한 전투 장면은 거대한 전쟁벽화처럼 웅장하면서도 비장미를 이끌어낸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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