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미국에서 식당을 하실 때였어요. 손님들이 팁으로 놓고 가는 50센트를 모으시려고 직접 테이블 서빙하는 걸 마다하지 않으셨죠.그러면서도 100달러나 하는 콘서트 표는 꼭 사주시곤 했어요. "
세계적인 음악가 삼남매 '정트리오'를 길러낸 이원숙 여사가 지난 15일 오후 11시47분 별세했다. 향년 93세.빈소인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은 명근,명화 씨와 사위 구삼열 씨가 지키고 있었다. 임종을 지켜본 차남 명근 씨는 16일 "어머니는 목표와 비전이 뚜렷한 '여걸'이셨다"고 회고했다. 정명훈 씨는 이날 오스트리아 빈에서,딸 경화 씨는 미국에서 각각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정명화 씨는 "노환으로 지난해 12월 병원에 입원하셔서 그 뒤로는 활동을 많이 못하셨다. 한 달 전부터는 호흡기를 달고 계셔서 말씀도 잘 못하셨지만 그래도 음악을 들려드리면 두 딸 앞에서 환하게 방긋 웃으셨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가사과를 나와 한때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남편인 정준채 씨(1980년 작고)의 월급만으로 집안을 꾸려가기 힘들어지자 서울 명동에 '고려정'이라는 음식점을 경영하며 7남매의 음악 교육을 뒷받침했다. 어린 시절 국내 콩쿠르를 석권했던 명화,경화 자매는 '고려정집 딸들'로 불렸다.
이 여사는 외상으로 피아노를 사 아이들에게 레슨을 시켰다. 6 · 25 때 부산으로 피란을 가면서 피아노를 싣고 간 일화는 유명하다.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딸들이 공연하는 날에는 신촌역을 지나는 기차가 기적 소리를 내지 않도록 철도청에 협조를 구할 만큼 당찬 여성이기도 했다.
고인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정 트리오' 외에도 자녀 4명 모두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목사로 활동했던 장녀 명소 씨(2007년 사망)는 플루트,명근 씨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미국에서 교수로 활동했던 명철 씨(1999년 사망)는 클라리넷,재미 의사인 막내 명규 씨는 트럼펫을 연주했다.
서양 음악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1960년 당시 17,13세였던 명화,경화씨를 미국으로 유학보냈다. 1962년 나머지 자녀들까지 모두 데리고 아예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자녀 교육의 경험담을 묶어 《통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 《너의 꿈을 펼쳐라》 등을 발간하기도 했다.
고인은 자기 계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을 때 44세였지만 "지금 배우면 40년은 더 쓸 수 있다"며 밤을 새워 영어 단어를 외웠다. 1984년에는 67세 나이로 신학대에 입학해 안수를 받아 목사가 됐다. 1990년 세화음악장학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으로서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했고,공로를 인정받아 새싹회 어머니상(1971년),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1990년),자랑스런 이화인상(1995년)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들 정명훈(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명근(CMI 대표),명규 씨(재미의사),딸 명화(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경화 씨(미국 줄리아드음악학교 교수),사위 구삼열 씨(서울관광마케팅주식회사 대표)가 있다. 발인은 18일 오전 11시.미국 뉴욕의 가족묘에 안장될 예정이다. (02)2258-5951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