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부터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근저당(담보권) 설정비용을 차입자가 내지 않아도 된다. 은행들이 부담키로 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또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소비자에게 근저당 설정비를 전가하는 일도 중단키로 했다. 법원이 이 문제와 관련해 은행 패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이에 따라 앞으로 연간 1조2000억원가량의 수익이 줄어들 전망이다. 은행들은 하지만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근저당 설정비 환급소송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대법원에 상고하는 등 법적 대응은 지속하고 있다.

◆3억원 대출 때 182만원 절감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16개 은행은 최근 은행연합회에서 회의를 열어 근저당 설정비를 오는 7월부터 부담키로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 은행 고위관계자는 "근저당 설정비를 은행이 내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은행 공동 여신거래 표준약관 개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개별 은행들은 7월부터 바뀐 약관을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은행고객이 3억원의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고자 한다면 감정평가 · 등기신청 · 법무사 수수료 · 인지세 등 225만2000원가량의 근저당 설정비를 내야 한다. 만약에 이를 내지 않겠다고 하면 은행이 대출 금리를 0.2%포인트 정도 올려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 넘기고 있다.

하지만 7월부터는 이런 관행이 아예 사라진다. 다만 기존 인지세의 절반과 국민주택채권손실 예상액 등으로 43만5000원(3억원 대출 때)을 부담하면 된다. 은행 관계자는 "3억원 대출 때 줄어드는 고객 부담은 182만원 정도"라며 "은행권 전체의 부담은 연간 1조2000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다음달까지 전산시스템 개편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등 주택담보대출 취급이 많은 은행들은 자체 법무사와 감정평가사 채용을 늘리기로 했다. 근저당 설정비용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법무사 및 감정평가사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은행 환급소송 걱정

은행의 이 같은 '선행'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고 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2008년 1월 근저당 설정비를 은행이 내도록 은행 표준약관 개정을 의결했다. 은행권은 이에 즉각 반발해 소송에 들어갔으며 지난해10월 대법원으로부터 은행 패소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지난달 6일 은행 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대법원의 판단을 확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은행은 지난달 26일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다. 은행들은 법원 판결이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은 담보제공 비용을 차주가 부담하는 내용의 공통 기준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대법원에 이은 서울고법의 확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재상고한 것은 대규모 설정비 환급 소송을 막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정위가 개선안을 마련한 이후 지금까지 은행들이 소비자에게 전가한 설정비 부담은 4조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은행들은 다만 이 소송에서 이겨도 오는 7월부터 근저당 설정비는 은행이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