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년 이탈리아인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가 쳄발로의 몸통을 써서 악기를 만든 뒤 피아노포르테라 이름붙인 게 효시다.
모든 악기의 기본이 되는 피아노는 비록 유럽 사람이 개발했지만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것은 미국의 스타인웨이와 일본의 야마하, 그리고 한국의 삼익악기 등이다.
이 중 스타인웨이의 대주주는 삼익악기다.
피아노에 관한 한 한국이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피아노는 대표적인 건반악기다. 나무로 된 작은 망치가 강철 프레임에 고정된 피아노줄을 때려서 소리낸다. 인천 청천동에 있는 삼익악기 본사에 들어서면 공장 안에서 피아노가 제작된다.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울림이 좋은 나무로 꼽히는 가문비나무(spruce)를 수입해 가공한다. 캐나다 등지에서 자라는 가문비나무를 1년가량 말린 것을 사다가 또 다시 6개월 정도 응달에서 건조시킨다. 이렇게 오랜 시간 말리는 것은 변형을 막고 공명 등 좋은 물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피아노는 크게 업라이트와 그랜드 두 가지로 나뉜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강선을 사선으로 배치한다. 이는 수직으로 배치할 때보다 조금 더 길게 해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내기 위한 것이다. 작은 나무망치 겉에는 양털을 붙인다. 부드러운 소리를 위한 것이다. 피아노는 대부분 셀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1대를 만드는데 2~3주 정도 걸린다. 나무 건조에 1년반 그리고 제조에 또다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적인 공산품과는 전혀 다르다.
"천연재료인 목재가 주된 소재인 데다 예술성 있는 악기를 만드는 과정에는 혼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이형국 삼익악기 대표(56)는 설명한다. 그는 "과거 유럽에선 아버지가 목재를 구하면 평생 말린 뒤 아들이 비로소 피아노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시간이 걸리고 품도 많이 드는 악기"라고 덧붙였다.
삼익악기의 작년 매출은 989억원.이 중 수출비중이 약 70%에 해당한다. 연간 수출액은 6000만달러가 넘는다. 수출 국가는 88개국.5대양 6대주가 이 회사의 수출지역인 셈이다. 제품은 피아노,기타,현악기,관악기를 망라하고 있지만 이 중 간판은 피아노와 기타다.
삼익악기가 악기 수출에서 두각을 나타낸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다양한 브랜드다. 주력제품인 피아노를 보자.피아노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60%를 차지한다. 이 회사가 갖고 있는 피아노 브랜드는 삼익을 포함해 약 20개에 이른다. 고급제품군에 속하는 독일 브랜드 자일러(Seiler)를 비롯해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크나베(Wm.Knabe & Co.),콜러 앤 캠벨(Kohler & Campbell),프램버거 (Pramberger) 등이 있다.
이 대표는 "여러 가지 브랜드를 갖춘 것은 현지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익이라는 브랜드만 고수하면 미국 시장을 뚫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인에게 친숙한 크나베,콜러 앤 캠벨,프램버거 브랜드를 인수했다. 그는 "이들은 짧게는 70년,길게는 200년 가까이 된 전통있는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유럽시장 공략을 위해 자일러라는 브랜드를 인수했다. 자일러는 독일 중부 키칭엔에 공장을 두고 만드는 제품으로 160년 역사를 갖고 있다. 브랜드 인수는 20~30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대표는 "우리는 세계적인 악기업체인 미국의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의 최대 주주로 31.8%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타의 경우는 자체 브랜드와 함께 세계적인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수출을 병행하고 있다.
둘째,생산과 판매의 글로벌화다. 이 회사의 생산기지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중국 상하이,독일 키칭엔 등 4곳에 있다. 고급제품은 독일과 한국에서 주로 만들고 대중적인 제품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만든다. 국내 공장의 인원은 100여명에 불과하지만 인도네시아 공장 인원은 3300여명에 이른다. 중국은 200여명,독일은 40여명이 근무한다. 연간 생산능력도 한국은 2000대,중국은 1500대,독일은 1000대 수준이지만 인도네시아 공장은 2만5000대에 이른다. 생산능력 기준으로는 인도네시아가 최대 생산기지인 셈이다. 실제 생산량도 인도네시아가 전체의 90%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에서 만드는 고급 제품의 가격은 대중적인 제품의 10배나 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다.
판매를 위해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쓰고 있다. 이 대표는 "중국의 경우 80여개 도시에 대리점망을 두고 있으며 이들이 자체적으로 현지화된 마케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경우 워낙 지역이 넓은데다 취향도 다르다. 그는 "예컨대 베이징 상하이와 티벳과 우루무치 지역을 똑같은 프로모션을 통해 시장을 개척할 수 없기 때문에 현지 대리점에 마케팅 주도권을 주되 이를 중국 법인에서 지원하는 형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화된 마케팅 방식으로 이란 등 몇몇 국가에서는 일본 피아노를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미국 시장에서도 15%를 점유하고 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이 대표는 마케팅 전문가다. 강원도 인제 출신의 이 대표는 직업 군인(대령 예편)인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다녔다. 춘천중과 대구 대륜고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을 거쳐 1993년 삼익악기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춘천중 밴드부 시절 드럼을 쳤고 그뒤 색소폰을 배우는 등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게 입사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은행 출신이면서도 자금을 담당하지 않고 영업일선에서 뛰었다. 외향적이면서 사교적인 성격 덕분이다. 입사 12년 만인 2005년 대표이사에 취임해 6년째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1년 중 절반은 중국에서 보낸다. 거대한 중국시장 개척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 대표는 "중국 출장이 1년 중 6개월가량 되는데 중국 본사인 상하이에 있는 게 아니라 중국 내에서 또다시 수십개 지역으로 출장을 다닌다"고 말했다. "발품을 파는 만큼 시장이 열린다"고 그는 확신한다.
이 대표는 "세계 최대 시장은 아직 미국이지만 중국은 무서운 기세로 크고 있는 나라"라며 "초등학생 자녀생일에 즉석에서 1700만원짜리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는 사례도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의 경우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명품 소비가 급증하고 있어 조만간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꿈은 단순하다. '세계 최고의 악기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끼를 비즈니스에 몽땅 쏟아붓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