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에 빠져 30년 컬렉션…3만5천점 모았죠"
"이건 '행드럼'이라는 놈입니다. 유튜브에서 연주 동영상을 보고 바로 짐을 싸서 빈으로 날아가 구해왔죠."

일산 킨텍스의 '세계악기감성체험-시끌벅적 악기궁전' 전시장.어린이들이 하루 평균 1000명씩 찾는 이곳에 2000여점의 희귀 악기들이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관람객들이 악기를 마음껏 두드리고 불어보고 뜯어본다. 전시장 한 켠의 악기 수리실에는 면이 찢겨나간 타악기,찌그러진 금관악기가 몇 점씩 쌓여있다. 그야말로 용감한 전시를 기획한 국내 최대 악기 대여 업체 피티에스(PTS)의 박창태 대표(49)를 만났다.

박 대표는 국내 공연계에서 '119'로 통한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음악과 관련된 국내 공연 치고 그를 찾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학 시절부터 그가 차곡차곡 모아온 악기는 6000여종 3만5000점이 넘는다. 기타 실로폰 트라이앵글 등 일반적인 것부터 이름조차 낯선 옥타패드 행드럼 앙크렁 발라폰 콩가 줌줌 첼레스타까지….

그가 악기와 인연을 맺은 건 중학교 3학년 때다. "그 당시엔 양철 도시락이었잖아요. 소풍 가서 숟가락 젓가락으로 도시락 뚜껑을 두드렸더니 친구들이 잘한다고 칭찬을 하더군요. 그 길로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고,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밴드부에 들어갔죠."

스승은 국내 클래식 타악의 선구자로 당시 국립교향악단 팀파니스트였던 박동욱 선생.3년간 사사한 뒤 1981년 경희대 음대에 들어갔고 공군 군악대를 거쳐 폴란드의 쇼팽음악원을 졸업했다. 고교 시절 실습할 악기가 없어 도화지에 타악기를 그려놓고 음정을 익히면서 심한 갈증을 느꼈다. 경희대 재학 중에는 유럽에서 공부한 친구의 곡으로 연주회를 열 때 '크로탈'이라는 악기가 국내에 없어 돈을 모아 사는 소동을 겪었다.

그후 돈이 생길 때마다 악기 구입에 쏟아부었다. "1993년 무렵 악기가 130가지쯤 모이자 여기저기서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서울시향에 특수 심벌즈 30점,뮤지컬 '캣츠'에 팀파니 등 10여가지를 빌려 줬어요. 사례비 명목으로 돈이 들어왔고,그 돈으로 다른 악기를 샀죠.악기 대여 사업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그가 1995년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참여한 공연 횟수는 클래식 3000여회,대중음악 1만3000여회 등 총 1만8000여회.주요 방송사의 음악 프로그램은 물론 마이클 잭슨,엔니오 모리코네 등 해외 음악가,대형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오페라,뮤지컬까지 셀 수도 없는 공연이 그의 악기와 함께했다.

한때 대중음악 쪽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때 눈물을 머금고 악기를 팔아봤어요. 유치원 강사로도 뛰고 패물도 내다팔았죠."

지금은 연매출이 10억원을 넘는다. 소화하는 공연은 월 평균 100여건.그는 "매출이 늘어도 대여료로 버는 돈보다 악기 사는 데 나가는 돈이 훨씬 많다"며 "두 달에 한 번은 해외로 나가 거대한 악기를 몇 점씩 사오는 못 말리는 취미가 문제"라고 말했다.

요즘엔 사업보다 교육에 더 관심이 많다. 이화여대 음대 교수인 그는 2001년 타악백과사전을 펴냈고 2006년엔 후배 음악인들을 키우기 위해 한국타악오케스트라(KPO)를 창설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오랜 꿈인 '음악체험박물관' 건립을 위해 리허설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다.

그는 내달 12일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오른다. 5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가 타악기만 들고 연주할 예정이다.

"세계 유명 작곡가들이 우리나라를 찾아 악기박물관에서 악기를 연주해보고 그 덕분에 좋은 곡을 작곡하는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