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보석업체,롤렉스에 이은 세계 2위 시계 메이커,인터브랜드 추산 브랜드 가치 40억달러.' 164년 역사를 지닌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를 설명해주는 '숫자'들이다. 까르띠에는 연 매출이 10조원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시계 · 보석업체인 리치몬트그룹의 대표 브랜드다. 리치몬트 산하에는 몽블랑 반클리프&아펠 바쉐론콘스탄틴 예거르쿨트르 IWC 등 명품 브랜드들이 10여개나 있지만,전체 매출의 절반은 까르띠에 한 브랜드에서 나온다.

베르나르 포나스 회장(64 · 사진)은 이런 까르띠에를 올해로 10년째 이끌고 있는 '장수 최고경영자(CEO)'다. 포나스 회장은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고 "분야를 막론하고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으려면 경쟁업체보다 더 창의적(creative)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까르띠에는 창의력 덕분에 생긴 경쟁업체와의 미세한 차이로 인해 언제나 '톱 클래스 명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은빛 머리카락과 '독수리 눈빛'(김은수 까르띠에코리아 홍보담당 이사의 표현)이 인상적인 그는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답했다. 답변을 도와줄 부하 직원도,까르띠에의 각종 경영지표가 담긴 노트도 그에겐 필요 없었다.

▼이번 SIHH에서 신제품 시계를 선보였습니다.

"자체 개발한 무브먼트(시계 동력장치) 4개와 함께 새로운 시계 12개를 내놓았습니다. '투르비옹'(중력으로 인한 초단위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중력을 다스리는 장치인 '아스트로 레귤레이터'도 처음 선보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까르띠에 시계의 매력 포인트를 '꼼꼼한 기술력'보다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생각하는데,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까르띠에는 오래 전부터 '컴플리케이션 워치'(투르비옹 등 난이도 높은 장치가 장착된 제품)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관련 무브먼트 생산량이 적었을 뿐이었죠.3년 전부터 이 부문에 엄청나게 투자했고,이제 상당량의 무브먼트를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

▼까르띠에로서는 사실상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인 셈인데요.

"창의력과 혁신은 명품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갖추지 않은 브랜드는 결코 '럭셔리'가 될 수 없습니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보석 재료와 새로운 모양이 나오는데,이걸 옛날 방식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죠.이것이 까르띠에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CEO로 있는 한 까르띠에는 끊임없이 혁신할 겁니다. 제품의 모양이나 재질을 바꾸는 것은 물론 가능한 모든 부문에서 꾸준히 혁신해나갈 겁니다. 다만 혁신하더라도 한눈에 까르띠에 제품이란 걸 알 수 있도록 '까르띠에 터치'는 가미합니다. "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창의적으로 일할까요.

"까르띠에 디자인팀을 예로 들게요. 팀원 30명 중 남녀가 반반입니다. 젊은 사람도 있고,중년도 있죠.국적은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인도 필리핀 등 11곳이나 됩니다. 그야말로 이것저것 다 섞인 용광로(melting pot)예요. 까르띠에의 아이디어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전 세계를 돌면서 보고,듣고,냄새를 맡은 데서 나옵니다. 이들은 시계 · 보석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 호기심을 갖고 둘러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느끼기 위해서죠.저의 역할은 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드라이브를 거는 겁니다. 저는 이들에게 '1950년에 선보인 시계와 똑같은 걸 만들어내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보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이런 문화 덕분에 까르띠에는 직원 이직률이 낮은 편이에요. "

▼리치몬트의 작년 3분기(10~12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33%나 늘어난 28억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제 경영원칙 중 하나가 '잘나가는 시점에 어려울 때를 대비하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일본 미국 유럽에서 장사가 잘될 때 중국 중동 CIS(독립국가연합) 등 신흥국을 뚫었습니다. 까르띠에는 '5개의 엔진'(미주 유럽 아시아 일본 중동)으로 나는 비행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엔진이 1~2개 고장나도 안전하게 집에 갈 수 있어요. 모든 엔진이 동시에 꺼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대로 모든 시장이 다 좋기를 기대하기도 힘들지만요. "(포나스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성장 둔화에 대비해 중동 미국 유럽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엔진이 시들해질 것에 대비해 다른 엔진들을 정비하는 셈이다. )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도 늘릴 계획입니까.

"한국은 까르띠에에 매우 중요한 시장입니다. 훌륭한 부티크가 있는 곳이죠(까르띠에는 2008년 서울 청담동에 세계 네 번째이자,아시아 최초로 대형 부티크인 '메종'을 냈다. 일본 중국보다 한국에 먼저 메종을 열어 화제가 됐다).한국 시장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사업을 앞으로 더 확장할 계획입니다. 매장을 추가로 열고,기존 매장도 규모를 넓힐 겁니다. "

▼까르띠에의 브랜드 파워라면 패션 등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도 성공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까르띠에는 패션을 하거나,호텔을 짓거나,휴대폰을 만드는 식의 다각화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이거든요. 우리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잘하는 보석 시계 향수 가죽 등 기존 분야에서 할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알지도 못하는 사업에 뛰어듭니까. 까르띠에가 몸 담은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면 모를까. 하지만 보석 시계 가죽 등 까르띠에가 몸 담은 분야는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입니다. "

▼많은 한국 기업들이 까르띠에처럼 명품 브랜드가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당신의 경쟁자들보다 더 창의적인 기업이 되십시오(Be more creative than all your competitors)'라고 조언하겠습니다. 물론 삼성이나 LG 같은 기업은 지금도 충분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측면에서) 앞으로 더 나아갈 여지는 있을 겁니다. 창의성은 경쟁업체와의 '차이'를 만듭니다. 이런 차이가 명품이냐,아니냐를 가르죠.패션만이 아닙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애플을 보세요. 제가 감히 한국 기업들에 조언한다면 '당신 회사의 창의력을 더욱 강화시켜라.그러면 이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글로벌 기업 CEO인 만큼 챙겨야 할 일이 많을 텐데요.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도,둘째도,셋째도 창의력입니다. 까르띠에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업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창의력을 가장 챙기는 이유입니다. 혁신은 창의력과 함께 가게 마련입니다. 창의력과 혁신을 갖춘 기업이라면 돈은 저절로 들어오겠죠."

▼까르띠에는 서민들에겐 벽이 높습니다. 보다 저렴한 대중적인 제품을 내놓을 계획이 있습니까.

"까르띠에는 모든 고객에게 열려 있습니다. 고가이긴 하지만,'트리니티' 반지 등은 일반 서민들도 접근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트리니티 모델 중 저렴한 것은 100만원대다).대중적인 제품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단순히 매출을 늘리기 위해 까르띠에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제품을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

▼일각에서는 명품업체들이 사회공헌에 인색하다고 비판합니다.

"저는 기업은 벌어들인 것에 비례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는 기업이 사회에 지는 의무입니다. 까르띠에도 세계 전역에서 수많은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밀수 등 어두운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활동은 계속될 겁니다. "

제네바(스위스)=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 포나스 회장은

1947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리옹의 ESC대를 거쳐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쳤다. 첫 직장은 미국계 생활용품 회사인 프록터앤드갬블(P&G)이었다. 이곳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일하며,파리 동부의 대형마트 등에 납품하는 제품을 관리했다. 명품업계에 발을 내디딘 건 1976년이었다. 국제골드협회를 거쳐 1984년 프랑스 화장품 · 향수업체인 겔랑에 들어가 국제 마케팅 · 개발 디렉터로 일했다. 그가 겔랑에서 일한 9년 동안 매출은 3억5000만프랑에서 22억프랑으로 6배 이상 증가했다.

까르띠에에 합류한 것은 1994년.시계 가죽제품 향수 안경 등을 담당하는 인터내셔널 마케팅 디렉터로 입사한 뒤 2000년 마케팅 총괄 매니저로 승진했다. 2001년 리치몬트 계열 시계 브랜드인 보메&메르시에 회장을 거쳐 2002년 까르띠에 회장으로 임명됐다. 까르띠에를 이끌며 200개 안팎이던 전 세계 직영 부티크 수를 300개 이상으로 확장하는 등 공격 경영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