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의 주식이나 회사채를 구입하면 그 회사의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현실 경제에서는 주식이나 회사채가 미래 소득흐름에 대한 권리인 만큼 이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언제든지 매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번 투자했더라도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관련 증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기는 방식의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다.

주식을 사고판 뒤 주가가 오르면 산 사람은 차액만큼 이익을 보고 판 사람은 정확히 그만큼 손해를 본다. 이 제로섬 상황만 놓고 보면 주식시장은 남의 이익을 빼앗아 내 이익으로 삼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그러나 주가 변동의 본질은 투자자들에게 좋은 투자 기회를 알려주는 신호로서의 기능이다.

사업이 잘되는 기업이면 그 주식을 사겠다는 수요가 늘어나므로 해당 주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거꾸로 기업의 사업이 어려워지면 그 주가는 급락한다. 이처럼 주식시장은 각 기업의 주가를 시시각각 결정함으로써 그 사업 내용을 평가하고,사람들은 주가를 보고 투자한다. 주식시장은 '약육강식'처럼 보이는 주가 형성 과정을 거쳐 사람들의 저축을 유망한 투자 기회로 안내하는 장인 것이다. 제로섬처럼 보이지만 실은 포지티브섬이다.

그런데 만약 몇 사람이 작당해 특정 주식을 반복해 사고팔면서 바람을 잡으면 정보에 어두운 다른 사람들이 이 주식을 유망한 줄 알고 사들이기 시작한다.

이 경우에도 해당 주가는 오르겠지만 이 주가 상승은 좋은 투자 기회를 알려주는 신호가 아니다. 정보가 부족한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미끼일 뿐이고 주가가 충분히 오르면 작전세력은 일제히 팔아치우고 시장을 떠나버리므로 선량한 투자자들만 피해를 당한다. 주식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사람들에게 좋은 투자 기회를 알선해야 한다. 사람들이 금융기관의 신용을 믿고 그 추천 상품을 구입하면 그 상품의 값은 오른다. 금융기관이 이 점을 악용하면 자신이 투자한 금융자산을 좋은 금융상품이라고 추천함으로써 큰 돈을 벌게 된다. 이러한 일이 잦은 금융시장도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금융시장은 사람들의 저축을 유망한 사업에 투자하도록 이끄는 신호를 제공하면서 때때로 한탕을 노리는 불순분자들이 공작하면 순식간에 '약육강식'의 장으로 돌변하는 위기를 맞기도 한다. 금융시장은 이러한 금융위기를 겪을 때마다 자체의 허점을 보완하는 제도 개혁을 통해 더 나은 금융시장으로 발전해 왔다.

작금의 금융위기도 결국 금융시장을 한 단계 더 높게 도약시키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