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기미를 보이는 듯하던 세계 경제가 다시 주춤거리고 있다. 미국은 재정건전성 강화 · 고용불안 · 가계부채 조정 등으로 경기 부진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고,유럽 역시 재정건전성 악화로,일본은 엔고와 재정적자 등의 영향으로 성장률이 둔화되리라는 예측이다. 또한 신흥국과 개도국은 선진국의 수요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교역 감소에 따른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나라들은 통화정책의 긴축이 지속되면서 내수 둔화가 예상된다는 진단이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양적 완화라는 이름 아래 다시 6000억달러를,일본 중앙은행은 30조엔을 풀어 경기를 부양할 계획이다. 과연 적절한 처방일까? 처방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진단이 옳아야 하는데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 연준의 낮은 이자율 정책이었다. 따라서 이런 정책으로 생긴 잘못된 투자와 소비를 고치는 조치가 적절한 처방이다. 이는 곧 정부가 왜곡된 경제를 다시 통화 · 재정정책으로 떠받치지 않고 시장의 구조조정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각국은 다시 돈을 풀고 재정 확대를 통해 불황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되레 여러 나라가 재정 파탄의 위기에 처하고 금융위기의 진앙에서 비껴서 있던 나라는 세계적 유동성 과잉으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게 됐다. 잘못된 투자와 소비 행태를 교정하는 기간인 불황을 활용하지 못하고 낭비하고 있는 탓이다.

돈이 풀려도 물가가 뛰어오를 조짐을 보이지 않는 것은 가계나 기업이 물건을 추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에서 돈이 흘러 나와도 부실 채권 정리가 우선인 만큼 대출에 적극적이지 않다. 기업은 언젠가 이자율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므로 현재의 낮은 이자율에 상응하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자율에 관한 한 기업이 생각하는 정상이자율에 상응하는 투자가 이미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현재의 낮은 이자율 수준에서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것은 다행이다. 만일 투자가 현재의 이자율에 맞춰 이뤄진다면 이는 다시 미래의 위기를 준비하는 것이다. 투자 촉진을 위해서는 규제철폐와 투자 관련 세금 인하 등의 정책이 유효할 것이다. 한편 부채와 미래의 불확실성에 직면한 가계의 소비도 늘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정책이 계속되는 한,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양적 완화 정책이 적절한 방책이 될 수 없는 것은 일본의 최근 20년 세월이 잘 보여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장기간 계속된 낮은 이자율 정책으로 빚어진 잘못된 투자 문제를 정치적 부담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불황 타개를 위해서는 경제의 부실을 털어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경기 부양의 강도를 더욱 세게 하라는 주문은 설득력이 없고 무책임한 것이다.

정치적 부담으로 구조조정이 어려운 국면에서 튀어 나온 것이 환율전쟁이다. 환율은 양국에서의 화폐 수요와 공급에 따른 비율로 결정되는데,미국의 달러 공급이 증가하면 그 가치는 하락한다. 이에 따라 미국의 상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수출은 늘어나고 수입은 감소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경쟁력은 경제의 생산성 향상 때문이 아니고 통화 팽창에 의한 것이어서 경제의 근본적 변화와는 무관하다. 환율전쟁은 짐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현재의 세계 경제가 당면한 과제는 현 불황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 관한 경제학의 문제로 귀착된다. 돈을 풀어 빚어진 문제를 다시 돈을 풀어 해결하려는 정책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적절한 조치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