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신체 중에 가장 먼저 늙는 곳은 어디일까.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의 눈 노화 전문학자 이브 코투아는 "눈은 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장기"라고 강조했다. 눈에서도 노폐물과 산화에 의해 가장 많이 노화되는 부분은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黃斑)'이다.

황반은 망막에서 빛을 인지하는 원뿔세포가 밀집돼 있는 곳이다. 망막의 주변부보다 선명한 노란 빛깔을 띠기 때문에 황반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상이 맺히는 망막의 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에 이 부위가 망가지면 시야의 중앙이 보이지 않게 된다. 김유철 계명대 동산병원 안과 교수는 "나이가 들면 눈에 노폐물이 쌓여 황반이 두터워지는데 이때 새로운 혈관이 자라나 피가 나거나 주변 부위가 붓게 되는 것이 '황반변성'"이라며 "겉으로 보이는 나이와 다르게 눈은 노화에 훨씬 민감하므로 젊어서부터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갑을 앞둔 서울 서초동 황정숙 씨(59 · 여)는 부부모임만 나가면 '동안(童顔)'이란 칭찬을 독식할 정도록 부러움을 사왔다. 40대 후반으로 봐주는 이도 적지 않았다. 매일 아침 피부에 좋다는 비타민C를 복용하고,주말마다 동호회 회원들과 관악산에 오르는 게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하지만 몇 달 전부터 급격히 시력이 떨어져 안과를 찾았더니 '황반변성'이란 진단이 나왔다. 피부결 등 외모는 상대적으로 늙지 않았지만 황반의 노화가 진행된 것이다.

황반변성은 서구에서 65세 이상 인구의 가장 큰 실명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과거 '나이 관련 황반변성'으로 불리며 주로 60~70대 이상에서 발병하는 노인성 질환이었으나 최근에는 발병층이 40대까지 내려왔다. 보건복지가족부가 2007~2009년 조사한 제4기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40세 이상 나이 관련 황반변성의 유병률은 11%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유철 교수는 "고령화가 황반변성 환자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이지만 중장년층에서의 발병률 증가는 고열량 · 고지방의 서구화된 식사습관,스트레스,자외선 노출,흡연 등을 요인으로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황반변성을 예방하기 위한 4가지 기본 수칙을 제시했다.

첫째는 금연이다. 폐암 환자의 90%가 흡연에 의한 것으로 추정될 만큼 담배는 폐에 해롭다. 또 흡연은 실명과 직결되는데도 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흡연자의 황반변성 발생비율은 비흡연자의 2~5배 수준으로 높다. 흡연으로 고지혈증 발병과 혈소판 응집성이 증가하고 혈중 항산화물질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명 예방을 위해 금연에 적극 나서야 한다.

둘째,담백한 식단을 꾸리고 항산화 비타민이 풍부한 녹황색 채소를 즐겨 먹어야 한다. 비만한 사람은 일반인에 비해 황반변성에 걸릴 확률이 높은데 열량이 낮은 한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게 좋다. 항산화 비타민은 노화(산화)에 의한 황반 손상을 감소시켜 망막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므로 녹황색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거나 비타민 제제의 도움을 받는다.

셋째,강렬한 자외선이 황반변성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에는 아직 이견이 있지만 눈동자 색이 옅어 햇빛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황반변성 발병률이 훨씬 높은 게 사실이다. 야외 작업이나 레저활동을 할 때 챙이 넓은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넷째,과로를 피하고 충분한 휴식 및 규칙적인 운동,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줄여나간다.

황반변성은 망막의 노폐물 사이를 뚫고 들어온 신생혈관을 없애주고 더 이상 혈관이 자라나지 않게 해 치료한다. 이를 위해 안과에서는 한국노바티스의 '루센티스'(성분명 라니비주맙) 같은 항체주사를 눈에 직접 주사,신생혈관이 자라나게 유도하는 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의 분비를 억제하는 근본적인 치료법을 쓴다.

이 약이 개발되기 전에는 레이저치료나 광역학치료(PDT)를 시행했으나 신생혈관을 제거하다 망막이 손상될 위험이 있고 떨어진 시력을 유지하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비해 루센티스는 환자의 약 40%에서 떨어진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으로 밝혀져 황반변성 치료의 새로운 해법이 되고 있다. 김 교수는 "눈의 흰자위에 주사하는 방식의 치료는 엉덩이 주사와 비슷한 수준의 통증을 주거나 약간 덜하다고 느끼는 환자들이 대다수이므로 주사 치료에 큰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50대 이후에는 정기건강검진에 망막검사를 포함시키는 게 좋다. 황반변성은 초기 증상이 미미하지만 급격히 진행되기 때문에 시력이 떨어져 찾아온 환자 중에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경우가 많다. 정기적인 망막검사가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극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