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한국경제 앱 개편 EVENT

[金과장 & 李대리] 일 떠넘기기…생색나는 일은 '나의 것'…귀찮은 일은 '너의 것'

공포의 퉁치기
혼자할 일도 남 끌어들여 괴롭혀…머리만 쓰고 몸쓰는 것 후배 몫

재주는 곰이 넘고…
칭찬 한마디에 후배들은 고분고분…일 떠넘겨도 보상 확실하다면야…

"어이 이 대리,잠깐만 면회!"

내 이럴 줄 알았다. 며칠째 잠잠하다 싶더니만,그 새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김 팀장의 습관성 '퉁치기'가 도질 참이다. "난 회사 미련 없어,명문대 나온 이 대리가 쌈빡한 머리로 함 아이디어좀 내 봐.에이 빨리 때려쳐야 할 텐데 말이야."(김 팀장)

'공포의 퉁치기'.네티즌 은어가 아니다. 초 · 중생들만의 용어도 더더욱 아니다. 직장인이면 다 안다. 바로 일떠넘기기를 뜻하는 직장인 버전 속어다. '자기 일을 남의 일이라고 믿기''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기'가 이들의 주요한 습성이자 특기다. 퉁치기로 덤터기를 쓰는 동료들은 열불이 난다. 일을 떠 넘긴 뒤 제대로 챙겨주는 상사는 그래도 낫다. 귀찮은 일은 모두 떠 넘기면서 '나 몰라라'하는 상사를 만나면 회사 시계가 '국방부 시계'보다 더디 가게 마련이다.

◆떠넘기기의 달인들

국내 한 증권사의 채권영업부 김모 대리(32).그는 스펙이 화려하다. 미국 대학을 나왔다. 영어 일어 중국어 3개 국어를 구사한다. 입사 초기만 해도 상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현재 김 대리는 부서 내에서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있다. 사건의 발단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회사 채권 영업부는 새로 내놓은 채권상품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고객들로부터 하루 종일 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부서원 모두가 끼니도 거를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박모 과장은 김 대리에게만 전화가 걸려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미심쩍게 생각했다. 처음에는 우연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김 대리에게는 전화 한 통 걸려 오지 않았다. 박 과장은 김 대리가 화장실에 간 사이 그의 전화기를 살펴봤다. 그랬더니 웬걸,전화기 선을 빼놓은 것 아닌가. "팀 야근을 할라치면 늘 핑계만 대고 요리조리 빠져 나가는 다른 부하직원이 되레 귀여워 보일 정도였다"고 박 과장은 털어놨다.

업무분담이라는 이유로 뭐든 나눠 지려는 꾀돌이도 적지 않다. 자신이 혼자 처리할 일인데도 누군가를 끌어 들여야 직성이 풀리는'커플링'을 좋아한다. 레퍼토리도 일정하다. "다 너희 잘 되라고 하는 거야.회사가 결국 너희들 것 아니냐"는 말이 습관처럼 따라 붙는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모 과장(37)의 상사 오 모 부장이 그런 케이스다. 티나는 일은 자신이 하고,생색나지 않고 귀찮은 일은 후배에게 떠넘기기 일쑤다. 거래처 항의 듣기,회사 행사 머릿수 채워주기 등이 대표적이다.

머리만 쓰고 몸을 부리지 않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회의에서는 당장이라도 최고급 호텔을 짓고 미국 증시에도 상장시킬 것처럼 떠들어 댄다. 그러나 상사가 막상 "한번 트라이 해봐"라고 말하면 곧바로 "저보다는 한 대리가 전문가입니다"라고 엉뚱한 사람을 걸고 넘어진다.

◆조언형 칭찬형 읍소형 등 유형도 제각각

일 떠넘기기에도 유형이 있다. 어떤 상사는 요령이 몸에 배다 못해 '예술의 경지'로 느껴질 정도라는 게 중견소프트웨어 업체 기술영업부 남모 대리(31)의 말이다. 진정성이 있다는 착각을 한 적도 여러차례다. 가장 흔한 게 '부하직원을 위한다'는 조언형이다. 남 대리는 바로 위 선배로부터 "현재 네 수준의 일만 해서는 일이 안 늘어.선배들이 하는 어려운 일도 해 봐야 '캐파(capacity · 역량)'가 넓어져.자네가 과장되고 부장되면 다 해야 할 일을 미리 겪어 본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듣는다.

상사의 입에서 평소 못 듣던 칭찬이 나오면 십중팔구 떠넘기기가 시작된다. "나는 이 업무에 대해 하나도 몰라.이 업무는 우리 팀에서 자네가 제일 잘하니깐 자네가 하는 게 팀을 위해서 맞다"며 상대방을 은근히 띄운다. 때론 '자네가 우리 회사에 있는 게 아깝다'는 아부성 발언까지 술술 나온다. 칭찬에 굶주린 후배들은 '언제라도 도와드리겠다'며 적극적으로 동조하게 마련이다. 천냥 빚을 갚는 말기술이 엉뚱한 데 쓰이는 셈이다.

읍소형도 있다. 금요일 오후,미안한 부탁이 많이 거래되는 때다. 최 과장이 슬쩍 다가와 민모 대리(29)에게 살가운 표정을 짓는다. 민 대리는 벌써부터 부아가 치민다. 역시 야근 부탁이다. "내가 요즘 와이프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미혼인 당신이 좀 대신 해주면 안되겠니? 내가 다음에 술 한잔 진하게 살 게"라며 커피를 내민다. 가끔씩은 아이가 아프단다. 확인할 길이 없으니 대놓고 반발하기 어렵다. 술을 얻어마신 기억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우릴 물로 보지 말라고'

직장 경력이 짧을수록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명문대와 외국대학원까지 나온 박모씨(31 · 여)는 처음엔 선배들의 업무를 적극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일이 잦자 '초심'을 잃고 말았다. 업무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주인공이 본인임을 은연중에 공개하는 것이다. 박씨는 "팀장과 선배가 다 참석한 회식 자리에서 일이 힘들다며 조언해달라고 하면 내가 그일을 떠안고 있음을 알리는 셈이 된다"며 "몇 번 이렇게 하자 쓸데 없는 덤터기가 확실히 줄었다"고 털어놨다.

짧은 경력에 실력까지 출중하면 일복이 터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다. 이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아예 숨겨버리는 '로 프로필(저자세)'전략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중견 식품업체에 다니는 곽 모대리(30)는 신세대 답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심이 많다.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활용 능력은 거의 전문가 수준.하지만 회사 내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장 일거리가 쏟아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떠넘기면 '분배의 리더십'

'일 떠넘기기'와 '정당한 업무 분배'를 명쾌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동시에 띠고 있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일 뿐,누구에겐가 떠넘기기도 하고 떠넘김을 당하기도 한다(S정밀 S대리)"는 얘기다.

하지만 수많은 일을 던져 주면서도 기분나쁘지 않게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일을 떠 넘기고 난 뒤 그에 대한 보상을 철저히 해 주는 상사와 선배직원은 어느 조직에서나 인정받는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박모 과장(35)은 일 떠넘기기의 선수지만 회사 내 에이스로 통한다. 후배들은 그를 따르고 그가 '퉁치는 일'까지 잘 받아준다. 업무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주고 화끈하게 보상을 해 주기 때문.박 과장을 직속 상사로 둔 연 모 대리는 "박 과장이 시키는 대로 하면 나중에 똑같은 일을 2~3번 안하고 한번에 끝낼 수 있다"며 "특히 보고할 때 연 대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는 식으로 꼭 내 이름을 집어넣어 평판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떠넘기기도 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다.

이관우/김동윤/이상은/이고운/강유현 기자 leebro2@hankyung.com

▼이 기사는 독자 glzzang37 님의 아이디어 제공으로 작성됐습니다.

◆알림='김 과장&이 대리'는 직장 생활에서 일어나는 각종 애환과 에피소드를 싣는 지면입니다. 보다 알차고 생생한 내용을 담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구합니다. '김 과장&이 대리'에서 다뤘으면 하는 주제와 각종 에피소드,직장생활 성공노하우 등을 직접 작성해 이메일(kimnlee@hankyung.com)로 보내 주시면 지면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1. 1
  2. 2
  3. 3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1. 1
  2. 2
  3. 3
  4. 4
  5. 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