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tory] 신명‥일본 기술 배워 克日…소성로 분야 글로벌 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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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ah! 히든 챔피언
경영포인트
① 기계 분야 33년 외길
② 일본 기술 습득 후 일본 넘어서는 전략 적중
③ 일밖에 모르는 창업자의 열정
경영포인트
① 기계 분야 33년 외길
② 일본 기술 습득 후 일본 넘어서는 전략 적중
③ 일밖에 모르는 창업자의 열정
지난 6월.대만의 한 기업인이 경기도 화성시 북양동에 있는 신명(대표 이정영ㆍ63)을 찾아왔다. 수원에서 제부도 가는 길목의 왼쪽 야산 자락에 있는 신명까지 이 기업인이 찾아온 것은 이 회사의 'OPC(Organic Photo Conductorㆍ유기감광체) 드럼용 코팅기'를 주문하러 온 것이다. 이 대만기업은 원래 일본 기계를 쓰다가 한국의 신명이 설비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2007년 한 대를 주문해 쓰던 터였다. 3년 동안 사용해 보니 마음에 들어 올초 한 대를 추가 주문한 뒤 아예 6월에는 제품가의 60%를 선금으로 보낼테니 또 한 대를 빨리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설비는 대당 가격이 200만달러가 넘는 고가장비다.
OPC드럼이란 레이저 프린터와 복사기 등의 카트리지 안에 들어가는 드럼으로 인쇄과정에서 필요한 핵심부품이다. OPC드럼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표면에 특수코팅이 돼 있어야 하는데 이 코팅 공정을 수행하는 장비를 바로 신명이 만든다. 이정영 대표는 "국내에서 첫 개발한 이 제품은 일본제품보다 20%가량 저렴하지만 품질은 일본 기계보다 우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신명은 리튬이온전지에 들어가는 파우더를 굽기 위한 특수로(爐)도 개발하고 있다. 리튬이온전지는 반복해서 쓸 수 있는 2차전지 가운데 가장 각광받는 전지로 휴대폰 노트북 컴퓨터 전기자동차 등에 들어간다. 연내에 완제품으로 내놓기 위해 여러 업체와 공동으로 마지막 테스트를 하고 있다. 'RHK(Roller Hearth Kiln)'라는 명칭의 이 제품은 리튬과 여러가지 조성물이 들어간 파우더를 1300도로 구워 원하는 물성을 얻는 장치다. 길이가 40m에 이르는 대형설비다. 이렇게 구워진 파우더는 휴대폰이나 노트북용 배터리의 원료가 된다. 신명은 2008년에 '태양전지용 퍼니스(furnace · 로)'도 개발했다.
신제품을 속속 내놓는 것은 기계 분야의 오랜 노하우와 일본 기술 접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 기술을 들여와 일본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게 이 대표의 전략이다.
외국 기술도입도 자체 역량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 대표는 대구 계성고를 거쳐 한양대 공대 섬유공학과를 나온 뒤 한창섬유 등에서 근무했다. 그러던 중 대구의 기계공장을 인수한 지인으로부터 영업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계 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8년가량 이 공장에서 중소기업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을 쌓은 뒤 1985년 경기도 부천에서 7명의 직원으로 창업(창업 당시 회사는 신명 계열사인 신명기전,그 뒤 1994년 창업한 회사가 신명)했다. 처음엔 자동 솔더링 기계(Soldering Machine)를 만든 뒤 TV부품 자동생산라인과 스피커 자동 제조라인을 개발했다. 1989년 군포로 이전한 뒤 VCR 헤드드럼 제조 라인,푸시 타입 소성로(燒成爐) 등을 잇달아 국산화했다. 이 대표의 기계 분야 경력은 올해로 33년째다.
신명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표의 '3무(無)경영'에서 비롯된다. 그는 무차입,무비밀,무분규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번 돈으로 투자한다. 군포에 이어 화성 공장(대지 6000㎡,건평 1650㎡)을 건설했지만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지었다. "은행 예금 등을 감안하면 빚은 거의 없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매출 이익 등 경영 실적은 모두 공개한다. 누구나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안다. 창업 이후 25년 동안 분규를 겪은 적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명은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 째가 외환위기 때다. 수주가 거의 없어 내수 매출이 격감했다. 하지만 건실하게 경영해온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외국 회사를 통해 솔더링 머신을 외상으로 수출하고 받지 못한 돈이 100만달러에 달했는데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8억5000만원의 환차익이 생겼고 기사회생의 발판이 됐다.
또 한 번은 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수주가 거의 끊겨 2008년 말과 2009년 상반기에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일감이 없어 출근해도 할일이 없었다. 직원들은 감원 바람이 불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임직원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견딘 끝에 한 명의 감원도 없이 위기를 넘겼다. 이때 임금 삭감이라는 고통을 감내한 것도 투명경영에서 비롯된다.
"올해는 경영사정이 좋아져 작년의 임금 삭감분을 대부분 보충해줄 수 있었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비 온 뒤 땅이 굳듯 어려움을 겪은 뒤 성장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들어 수주가 늘면서 지난해 120억원이던 매출이 올해는 두 배가 넘는 약 290억원(자회사 신명기전 포함)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수주가 늘면서 기존 공장 옆에 660㎡ 규모의 제2공장을 짓고 있다.
이 대표는 "각종 기계 설비를 일본 제품과 비교하면 정밀도와 내구성 등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은 싸 해외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품질 관리에 꼼꼼히 나서는 것은 물론이다. ISO9001과 14001을 획득했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은 적층형 세라믹 콘덴서(MLCC · multi-layer ceramic condensor)를 굽는 설비다. 콘덴서의 크기는 가로 세로 두께가 각 1㎜ 이하다. 이 얇은 콘덴서 안에는 무려 500~600층의 세라믹 판이 쌓여 있다. 미크론 단위의 작은 판이다. 게다가 세라믹 판들 사이엔 적당한 간극이 있다. 전기로의 온도는 1350도의 고온이다. 전기로 내부에는 제품의 산화를 막기 위해 질소와 수소 등이 주입된다. 이 과정을 통해 니켈 파우더는 비로소 돌처럼 단단해진다. 이 설비 한 대면 월 5억~6억개의 적층형 세라믹 콘덴서를 구울 수 있다. 이 설비에서 만들어진 콘덴서는 휴대폰은 물론 MP3 DMB CD플레이어 내비게이션 TV 등 거의 모든 가전제품이나 통신기기에 사용된다.
휴대폰에는 보통 100개 이상의 미세한 콘덴서가 들어 있다. 이 콘덴서는 충전된 배터리의 전류를 받았다가 반도체를 비롯한 각 부품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리가 쓰는 휴대폰이나 가전제품 정보통신기기에도 이 회사의 소성로에서 구워진 콘덴서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콘덴서용 고온 소성로 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 적층형 콘덴서 소성로 가운데 주력 제품은 '전자동 푸시 타입(Push Type) 가스 분위기 소성로'와 '메시(Mesh) 벨트 컨베이어식 가스 분위기 소성로'다. 푸시타입은 자동으로 밀어서 세라믹 콘덴서를 굽는 장치이고 메시 타입은 그물망 형태의 벨트로 이동시켜 소성하는 설비다. 이들 설비는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시라이시전기와 기술제휴를 맺고 생산한다. 고온 소성로의 온도 편차가 5도 이내로 유지되는 것도 이런 자체 기술과 제휴 기술의 융합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2차전지인 리튬이온전지용 로인 RHK는 일본 NGK와 기술협약으로 연내 생산예정이다. 이 설비들은 삼성을 비롯해 여러 전자제품 및 부품제조업체에 납품되며 전량 주문제작된다.
신명은 연구 · 개발(R&D)에 적극 나서는 기업이다. 공장안 기술연구소에는 7명의 전담 연구 인력이 일하고 있다. 전체 직원 50명의 14%에 해당한다. 이 대표는 "해외 바이어들이 전자부품 업체에서 신명의 기계설비에 대한 품질을 확인한 뒤 국내로 찾아와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적극 해외로 뛸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매출액의 15% 수준인 수출 비중을 30%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주된 시장은 중국 대만과 동남아를 겨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일밖에 모르는 기업인이다. 사무실에는 그의 성격을 대변하듯 '무한불성(無汗不成 · 땀을 흘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이라고 씌여진 큰 액자가 걸려있다. 그러나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에서 한걸음 나아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청년 같은 기업인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