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아이폰 고장나도 '애플' 로 안가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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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 한 줄만 생기면 가벼운 손상으로 '무상' 처리되지만 두 줄 이상부턴 29만400원을 내야 한다는 소릴 들은 것. 그는 5분의 1도 채 안 되는 5만원을 받는 서울 강남의 한 아이폰 수리 사설업체로 발길을 돌렸다.
김씨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경우 보통 두 줄 이상의 금이 생긴다”며 “고객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애플의 사후서비스(AS) 정책 때문에 아이폰을 쓰는 주변 지인들은 주로 사설업체를 찾는다”고 했다.
김진아씨의 경우처럼 애플의 '공식' AS 매장(KT플라자)에서 발길을 돌리는 아이폰 사용자들이 최근 크게 늘면서 아이폰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비공식' 사설업체가 성업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되는 사설업체 수는 30여개. 각 업체의 지사까지 포함하면 두배에 가까운 50~60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한 업체의 경우 일본에 지사를 내는 등 해외까지 진출하고 있다.
◆애플 공식 수리정책이 비공식업체 '붐' 이끌어
이 같은 아이폰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애플의 '까다로운' AS정책에서 비롯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애플은 구입 후 1년까지 무상으로 수리해 주지만 개인의 실수로 판명되면 가벼운 손상이라도 최소 29만400원을 내도록 하고 있다. 또 수리가 아닌 다른 휴대폰으로 교환해주는 정책이어서 재고가 없을 경우 길게는 2주 간 임대폰을 써야 한다.
소비자들은 아이폰이 고장났을 때 수리를 받기 위해 ‘비싼 비용, 긴 기간, 휴대폰 교환’이란 3중고를 감당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곧 사설업체의 '붐'으로 연결되고 있다.
◆ 비공식업체의 경쟁력은 중국산 '짝퉁부품'
아이폰 수리 사설업체 1호인 '아이웨이' 강남점에는 하루 15명 이상의 고객이 매장을 방문한다. 아이웨이는 분점으로 홍대, 왕십리, 강변, 부산 서면 등 네 곳을 두고 있어 총 고객 수는 훨씬 많다.
강명호 아이웨이 실장은 “올 초만 해도 강남점에만 하루 40명 정도의 손님이 왔다”며 “사설업체들이 갑자기 불어나 손님이 분산됐지만 저녁 12시까지 근무할 만큼 바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식 수리매장인 KT플라자 대신 사설업체를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비용 때문이다.
12일 아이웨이에 배달온 ‘완전 파손’된 아이폰은 KT플라자에서 수리하면 83만1600원으로 새 휴대폰을 구입하는 비용과 비슷하지만 이곳에선 35만원에 수리가 가능하다. 가장 많이 접수되는 강화유리 파손의 경우, 업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사설업체가 공식매장 보다 24만원 정도 싸다.
사설업체가 이렇게 싼 값에 수리할 수 있는 비결은 ‘중국산 짝퉁부품’에 있다. 사설업체측에 따르면 아이폰 카피부품은 대만, 중국 등에서 직접 수입하거나 수입한 사설업체를 통해 조달받는다. 또한 애플 부품공장에서 버려지는 불량부품을 중개인으로부터 매수하는 사설업체도 있다고 한다.
조민우 아이폰코리아 강남지점장은 “대부분이 대만, 중국 등에서 카피된 부품을 수입한다”며 “국내에 모조부품만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업체가 다섯 곳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사설업체는 부품으로 그 자리에서 직접 수리하기 때문에 ‘휴대폰 교환, 긴 기간’의 정식 AS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한다.
◆ 문제는 'C급' 짝퉁부품 … 소비자는 '복불복'
카피부품을 사용하는 사설업체는 ‘싸고, 빠르게, 쓰던 휴대폰 그대로’ 수리, 애플 수리정책의 불만을 모두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도 심각하다.
조민우 아이폰코리아 강남지점장은 “짝퉁부품이라고 해서 질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C급 부품은 눈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다”고 전했다.
사설업체들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모조부품이 A, B, C급으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A급을 사용하는 업체들은 불량률이 낮지만 훨씬 저렴한 C급을 쓰는 업체들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만들기도 한다.
강명호 아이웨이 실장은 “아이폰을 분해해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며 “업계에선 이런 부품을 쓰는 업체가 20%가량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애플은 본체를 분해한 흔적이 있으면 ‘완전 파손’으로 판단해 AS를 아예 해주기 않는다. C급 부품으로 휴대폰이 망가져도 새로 사지 않는 이상 구제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침수로 액정이 까맣게 변한 아이폰을 사용 중인 류재응(27)씨는 “KT는 수리비가 너무 비싸서, 사설업체는 나중에 애플 서비스를 못 받을까봐 아직도 고장난 걸 쓴다”며 “참았다가 아이폰4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국내 안 나온 '아이폰4' 부품도 완비
국내에 여섯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아이폰코리아는 앞으로 더 많은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아이폰4의 모조부품도 이미 확보해 놨다. 조민우 아이폰코리아 강남지점장은 “미래 고객의 수요를 감안, 중국 팍스콘 협력업체에서 아이폰4 생산 얘기를 듣자마자 카피부품을 수입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이폰 이용자들의 AS 불만이 여전한 상황에서 올해 아이폰3GS 무상기간인 1년이 지나고 아이폰4가 출시되면 사설업체의 수요는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KT측은 “애플의 정책은 세계 공통이어서 한국 고객들에게만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며 “아이폰4 AS 정책도 3GS와 같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폰 관련 문제를 접수하는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정책이나 방침이 현재 전무한 형편이다.
네이버 스마트폰 카페 회원인 노양진씨(27)는 “대부분이 아이폰을 구입하기 전, 기능만 보지 세세한 AS 가격까지 따지지 않는다”며 “아이폰 사용자들을 위한 배려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비스경쟁 新풍속도까지
사설업체의 붐은 다양한 '풍속도'를 탄생시키고 있다. 사설업체끼리의 마케팅 경쟁이 그것이다. 아이웨이는 회사에서 아이폰을 배급받는 30, 40대 직장인을 겨냥해 밤 12시까지 매장을 운영하고 아이폰코리아는 삼성에서 기술연구자를 초빙해 오기도 했다. 나중에 정식 매장에서 AS를 받을 수 있도록 수리 흔적을 최소화해 준다는 업체들의 광고도 눈에 띈다.
사설업체들의 편리한 서비스와 뛰어난 기술력은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외국 고객들의 눈길도 사로잡고 있다. 강명호 아이웨이 실장과 조민우 아이폰코리아 강남지점장은 각각 “통역관을 대동하고 나타난 외국 손님도 있다”, "중동쪽 주한대사관에서 아이폰 수리를 의뢰했다"고 전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인턴기자 ji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