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2분기 깜짝실적 봐라…제재논의 채권단 법적근거도 없다"
2분기가 끝난 지 불과 엿새 만인 6일,현대상선이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8월 초쯤 공개하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실적은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다. 매출 1조9885억원,영업이익 1536억원으로 1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13.3%,영업이익은 무려 12배 증가했다. 현대그룹이 재무팀을 밤샘작업시켜 가며 주력 계열사의 실적을 일찍 내놓은 목적은 명확하다. 외환은행 등 채권단을 향해 '이렇게 실적이 좋은 우리 회사가 재무구조개선약정 대상이냐"며 항변하는 것이다.

현대상선 실적 호전

김성만 현대상선 사장은 지난 2일 한국선주협회 주최로 천안에서 열린 해운사 사장단 연찬회에서 기자와 만나 채권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올해 해운 시황이 상당히 좋아지고 있고,실적도 뒷받침될 것이라고 수차례 얘기했는데 믿어주지 않더라"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는 "은행이 살아보려고 하는 회사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나. 특히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작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협정을 맺으라고 강요하는 배경에 무언가 의문이 든다"고도 했다.

현대상선의 이날 자료는 김 사장의 '주장'을 숫자로 입증하는 것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매출은 38.8% 증가했다. 작년 2분기 1465억원의 영업적자에서 올 2분기엔 153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상선은 1분기에 116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회사 측은 3분기 이후에도 이 같은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컨테이너 운임지수인 HRCI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지난달 30일엔 629.0까지 올랐다. 지난해 이맘때 지수는 360이 채 안됐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재무약정 맺은 기업들 '관심 집중'

현대그룹은 실적 공개와 함께 외환은행 등 채권단이 지난달 30일 결의한 신규대출 금지 등 '제재 조치'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 근거를 제시했다. 외환은행이 소집한 '전체 채권은행 협의회'의 공동 결의가 법적 근거가 없으며,이를 강행할 경우 공정거래법에 위배된다는 게 골자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 제55조는 주채권은행만이 여신 취급을 중단하거나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외환은행 외 다른 채권은행이 제재조치를 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과 기타 채권은행들이 함께 현대그룹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지연에 대해 신규여신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 1항 1호의 불공정한 집단거래거절행위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관계자는 "채권은행이 모여서 제재를 논의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 온 관례"라며 "왜 현대그룹만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외환은행은 현대상선의 2분기 실적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했다. "금융 비용,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순이익은 몇 백억밖에 안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순이익을 계산하려면 결산 직후 최소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순이익도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이지만 섣불리 발표했다가 나중에 숫자가 1원이라도 틀리면 공정공시 위반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발표를 미룬 것"이라고 말했다.

5월 말부터 현재까지 세 차례 약정 체결이 연장될 정도로 현대그룹과 외환은행 간 공방이 치열해지자 과거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했던 한진그룹 등은 이 싸움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주목하고 있다.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한진해운도 올 들어 뚜렷한 실적 호전세를 보이고 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A사의 재무 담당자는 "약정 체결 사실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자금조달 금리가 훌쩍 뛰었다"며 "결과적으로 국내에서 실컷 돈 벌어 해외 은행에 돈을 바치는 꼴이 됐다"고 말했다.

박동휘/장창민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