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 6 · 25전쟁이 발발한 지 꼭 60년이 지났다. 지금부터 육십갑자 전에 우리나라 전쟁에 참전했던 생존 미군들이 훈장과 기장이 잔뜩 달린 군복을 입고 자국의 중 · 고등학교를 직접 다니면서 전쟁의 의미와 전란의 참상을 가르치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림잡아 팔순 이쪽저쪽인 백발의 노병들에게서 직접 강연을 들은 미국 청소년들이 꽤나 흥분한 얼굴로,이 세상에서 미국과 미국의 가치관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훨씬 다양한 시각과 드넓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할 때 내 등에선 소름이 돋았다.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 못했지만 강연을 들은 뒤엔 자매와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됐다는 여학생도 있었다. 전쟁 경험담을 들려주고 교실을 나서는 벽안의 노병들 역시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긍지와 자부심이 새삼 되살아나서 표정이 하나같이 상기돼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청춘을 바쳐 지킨 한국의 발전상을 기적이라고 부르며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미국은 참전국인데 비해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겪은 당사자임에도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알다시피 6 · 25전쟁은 50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금세기 최악의 동족상잔 비극이다. 3년여에 걸친 전쟁으로 국토는 완전히 폐허가 됐고,10만명이 넘는 고아와 20만명의 전쟁 미망인,무려 1000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그 여파가 60년이 지난 지금도 명절만 돌아오면 울부짖는 실향의 한(恨)으로 남아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16개 나라가 참전해 우리를 도왔으며,미국 대통령의 아들을 포함한 수만명의 연합군이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지금 한창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우리를 도와준 참전국 가운데 하나다.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당시 새파란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생존해 있어도 팔십 구십 세 고령들이 되셨다. 그러나 미국보다는 훨씬 많은 분들이 살아 계신 것만은 틀림없다. 또한 전쟁을 경험한 체험담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사단장에서 장교,하사관,일반 사병,심지어 인민군 신분으로 겪은 전쟁의 다양한 체험담과 생생한 증언들은 수많은 피를 흘리고 얻은 값진 대가다. 더 늦기 전에 이 천금 같은 산 교육을 우리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면 분단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호전적인 북한 집단을 상대하는 데 무엇보다 든든한 자산이 될 것이다.

월남전에 참전한 우리 용사들도 있다. 그들 역시 육순 칠순의 적잖은 나이들이 돼버렸지만 세상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미국 노병들과 같은 역할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시대는 흐르고 세상은 바뀌었으나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 이 자리에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보수나 진보 따위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정치적 이념 논쟁을 떠나 대한민국의 후예로서 최소한의 역사관은 전수하고 계승해야 옳지 않은가?

조금 각도는 다르지만 일본 우익을 상대하는 대응전략도 교육에 초점을 맞춰 연구할 필요가 있다. 저들이 주기적으로 망언을 일삼고 독도 영유권이라는 칼날을 불쑥불쑥 내미는 본질은 정치가 아니라 교육 문제다. 자기네 아이들에게 진실을 왜곡해서 엉터리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학생들에게 '일제침략수탈사' 교육을 강화하여 남의 것을 강탈하기 좋아하는 일본의 근성과 정체를 알리고 경계시켜야 마땅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에 피해를 입은 국가들과 연계한다면 그 움직임 자체만으로 일본에겐 커다란 압력이 될 수 있다. 미래를 지향할 것이냐,과거로 회귀할 것이냐 하는 선택은 전적으로 일본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우리에겐 그에 맞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김정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