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미국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를 계기로 해저유전 개발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바다 밑 에너지 개발은 '넥스트 프런티어(next frontier)'로 불릴 정도로 각국과 석유 메이저들이 눈독을 들인다. 석유 메이저들은 첨단 시추기술을 발전시키면서 과거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수면 아래 수킬로미터까지 뚫어 석유와 천연가스를 캐낸다. 시추과정에서 대형 오염사고를 초래해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발도 사지만 심해는 이미 총성없는 에너지 전쟁터다.

[해저 유전개발 '보이지 않는 전쟁'] 심해油井 찾아 바다밑 3㎞까지 시추…한번 뚫는데 1억弗
◆석유 메이저들 갈수록 심해로 눈돌려

각국과 석유 메이저들은 기존의 석유 공급시장에서 벗어나고 에너지 국수주의를 피하기 위해 심해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중동지역의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자는 것이다.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유전이 점점 고갈되는 점도 작용했다. 육상 시추와 깊이 200m 정도의 대륙붕 개발로는 경제 성장에 따른 석유와 천연가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더욱이 심해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는 상당하다. '오일 앤드 가스 저널'이 지난해 1월 현재 추정한 전세계 석유 매장량은 1조3420억배럴,천연가스 매장량은 6254조입방피트다. 에너지 데이터 분석전문인 인필드는 서부아프리카,브라질,미국 멕시코만,북해,아시아 · 태평양지역에서 2004년까지 발견된 심해 매장량은 석유가 총 315억배럴,천연가스는 총 75조8530억입방피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 4월 영국의 석유메이저 BP가 사고를 낸 미 멕시코만은 추정 매장량이 각각 58억200만배럴,13조9860억입방피트에 달한다. 미 내무부 산하 광물관리서비스국은 소비 속도를 감안할 경우 미국이 앞으로 7년반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매장량이라고 분석했다. 내년까지 멕시코만에서 하루 생산되는 원유가 225만배럴로 예상되는데 이 중 약 80%를 심해유전이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세계 심해유전 시추선들 중 약 3분의 1은 멕시코만에 몰려있다고 한다. 1990년 멕시코만의 심해생산 원유 비중은 약 4%에 불과했다.

◆고도의 시추기술로 승부

해저 유전개발은 1947년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가 접한 멕시코만 연안에서 출발했다. 당시 유전은 실내 수영장 깊이인 15피트(4.6m) 수준에서 개발됐다. 이후 시추기술이 급속히 발전해 통상 바다 밑 1000피트(304m) 깊이 이상에서 시추하는 것을 심해유전 개발이라고 한다. 5000피트 이상은 울트라 심해유전 개발로 지칭한다. 미국의 2위 석유메이저인 셰브론은 2003년 1만11피트(3.05㎞) 유전을 개발했다. 샌 래먼이라는 석유회사는 2008년 4만피트(12.1㎞) 개발용 시추선을 빌렸다. 심해유전을 개발하려면 첨단기술이 필요하다. 3차원이나 4차원 지진정보를 컴퓨터로 분석해 시추할 유전을 찾아낸다. 해저의 엄청난 압력과 온도도 극복해야 한다. 심해 기름밭 1개를 개발하는 데는 얕은 바다 개발비용의 10배가 넘는 1억달러 이상이 소요된다.

석유공급 업체인 웨스턴게코의 로빈 워크 전문가는 "먼저 대형 심해시추선을 성냥갑으로 상상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위층은 물로 채워져 있고,아래층은 바위,모래,소금으로 채워진 2층짜리 건물 위에 성냥갑이 올려져 있다고 치자.시추선의 파이프가 해저유전을 찾아서 뚫는 일은 마치 성냥갑에서 내려진 한가닥 머리카락이 건물 아래층에 놓인 동전 한개를 맞추는 것처럼 어렵다"고 설명했다.

시추 성공률은 30% 정도여서 석유가 매장되지 않은 곳을 뚫어 허탕을 치면 1억달러 이상이 깨진다. 그래도 개발이익이 남아 석유 메이저들이 심해로 달려든다. 브라질 석유 메이저인 페트로브라스는 2007년 자국의 투피 심해에서 매장량 80억배럴짜리 유전을 발굴해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세계 석유업계는 2010~2014년 5년 동안 심해유전 개발에 1670억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했다.

◆치열한 석유자원 확보전

"뚫고 또 뚫어라(drill,baby,drill)."이는 2008년 공화당 전당대회 때 마이클 스틸 전 메릴랜드 부주지사가 사용한 슬로건으로 해저 원유 · 천연가스 개발에 적극적인 미국 보수층의 입장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해외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에너지 독립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대선공약을 뒤집고 지난 3월 말 미 멕시코만 일대에 추가 시추를 과감히 허용했다. 미국은 2007년 1인당 연간 석유소비량이 24배럴이었다. 세계 평균인 4.4배럴보다 약 6배가 많다. 중국은 1.3배럴이고 인도는 1배럴 이하였다. 경제 성장으로 중국과 인도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이 세계 평균 소비량인 4.4배럴에 달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세계 석유 생산량을 32% 늘려야 할 것으로 계산됐다.

따라서 태양열 풍력 조력 등 청정 대체에너지가 완전히 자리잡기 전에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심해유전 개발 경쟁은 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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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