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얼마 전 한 대학 졸업식에서 말한 축사 내용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아이패드'나 '아이팟'과 같은 혁신적인 새로운 정보통신기기들이 민주시민의 능력배양과 해방에 기여하기보다는,불필요한 오락정보나 황당한 루머를 유포시킴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가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현재 미국을 위시한 대부분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각종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집단 간에 사사건건 대립구조를 이루며 사회적 안정을 위협할 정도의 극단화로 치닫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사회적 갈등의 원인과 관련해 그 책임의 일부를 첨단 IT기기 산업으로 돌리면서 성숙한 민주 시민의식의 배양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자신의 출생이나 이슬람세력과의 관계설 같은 유언비어들이 인터넷의 토론방,블로그,트위터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최근에는 의료보험법 개정 과정에서도 선거 때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첨단 IT 기술을 불신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무명이던 그가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역설적으로 바로 그 첨단 정보통신기술 덕분이었다.

사실 정치사회적 집단 간에 의견이 양극화되는 원인은 첨단 기술 자체보다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사회적 환경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 정보의 양과 선택권이 무한대로 늘어날 때 사람들이 보이는 정보 소비 및 선택 행위는 일반 상식과 달리 매우 편식적이다. 정보의 양과 선택권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기존 자신들의 성향에 일치하는 정보에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에서 입증됐다.

일반 가정에 위성이나 케이블을 통해 수없이 많은 채널을 제공해도 사람들이 실제로 보는 것은 기존에 좋아하던 몇 개의 채널에 항상 고정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특히 인터넷과 같은 매체에서 이런 성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데 비슷한 관심과 취향 중심의'끼리끼리' 문화가 사회 전체적으로는 심각한 후유증을 안겨줄 수 있다. 자신의 관심 정보만 좇고 또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다보면 생각이 점차 극단화된다. 집단 간의 유대감이나 공통점은 점점 없어지게 돼 이른바 '사회적 분극화' 현상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신념 가운데 일단 한번 형성되면 변화시키기 가장 어려운 것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좌 · 우 이념적 성향의 골이 구조적으로 깊게 파여 있는 상태에서 사회적 분극화는 더 파행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의 천안함 사건,2년 전의 광우병 파동을 비롯해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겪는 소모적이며 극단적인 국론 분열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도 안 믿는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 서글픈 자화상이다. 우리사회의 핵심 가치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임에도 이것과 반하는 주장과 행동이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용인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언론은 사회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인데 이것 또한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다. 특히 전문성 기반의 뉴스 게이트키핑 기능이 실종된 첨단 IT기술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분명 같은 국가이면서도 마치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어떤 생각이건 그것이 단순한 의견인 경우 온 · 오프라인 상에서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의 왜곡이나 조작에 대하여는 강력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물리적 처벌만으로는 근원적 해결이 어렵다.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권위를 인정받는 언론과 첨단 정보통신 기기들이 한데 뭉쳐 공동체 지향의 시민정신을 함양해 나갈 때만 우리는 선진화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김영석 <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한국경제·우리은행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