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전자업체 구인난 더 심각
11일 오후 2시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20여명의 3학년 학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LG디스플레이에 기능직 사원 입사지원서를 낸 이들은 간단한 필기시험과 함께 면접을 봤다. 난생 처음 치르는 입사시험이라 긴장할 법도 했지만,학생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미래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3D(3차원 영상)'라고 거침없이 대답하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이날 면접장에 나온 A양은 "LG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의 채용 일정도 많이 잡혀 있어 올해는 합격률이 꽤 높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날 부산지역에서도 부산여상과 부산진여상 학생 등을 대상으로 똑같은 전형을 진행했다.
◆단기 채용 급증에 기숙사도 모자라
대졸 채용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지만 기능직 고졸인력 시장은 상황이 정반대다. 대규모 기능직(생산직) 인력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LCD(액정표시장치) 등의 사업장들이 잇따라 시설 투자를 늘리고 있는 덕분이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은 올해 투자규모를 당초 5조5000억원에서 8조원 수준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 분야는 장치 산업의 특성상 공정검사와 장비 유지 · 보수에 많은 기능직 인력을 필요로 한다.
삼성 반도체는 올해 기능직 인력 전체 채용규모를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연초 책정했던 것보다 1000명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인력채용을 거의 동결했던 하이닉스도 1000명을 신규로 뽑을 예정이다. 업계는 올해 반도체 부문의 기능직 신규고용이 4000~5000명 선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300㎜ 신규라인 하나를 건설하면 500~700명의 새로운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내년까지 M팹을 비롯한 3개 라인을 새로 지을 경우 1500명 정도를 더 뽑아야 한다.
올해 채용규모가 가장 큰 기업은 LG디스플레이다. 이 회사의 박동락 인사운영팀장은 "지난해 4500명의 기능직 인력을 충원한 데 이어 올해도 파주사업장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4500명을 더 채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단기간에 많은 인력을 뽑다보니 회사 기숙사도 동이 나 '3인1실'이 '다인1실'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후문이다. LG와 경쟁관계에 있는 S-LCD도 수천명의 고졸 사원을 뽑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 · 소재 품귀로 최대 호황을 맞고 있는 삼성 LG의 중소 · 중견 협력업체들도 투자 확대에 따른 신규 인력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완산여고 전주사대부고 등 전주 지역의 전문계 고교에는 STS반도체 태산LCD 등으로부터 오는 7월부터 졸업반 학생을 보내 달라는 구인요청서가 쇄도하고 있다. 전주사대부고의 취업담당 김진영 교사는 "작년에는 기업들이 6월부터 학생들을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올해는 지난 3월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보낼 수 있는 학생 숫자가 제한돼 있어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복수 합격자 속출할 듯
이처럼 단기에 졸업반 학생들에 대한 구인 수요가 폭증하고 있지만 전문계고 학생들 중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지 않아 기업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재 전문계고에 재학 중인 3학년생은 총 16만여명.이 가운데 예 · 체능계를 제외한 숫자는 13만~14만명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최근 전문계고의 대학진학률이 75%를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취업이 가능한 학생은 3만~4만명에 불과하다.
이나마도 다 채용하기가 어렵다. 정규사원이기 때문에 서류전형-필기시험-면접이라는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탈락 학생들이 나온다. 게다가 남자는 군필이 입사 조건이기 때문에 당장 뽑을 수도 없다. 이런저런 변수를 빼고 나면 기업들이 채용할 수 있는 인력 풀은 2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초 LG그룹이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기능직 사원만도 4000명에 달한다. 이 숫자에는 LG디스플레이가 추가로 뽑겠다는 1500명과 최근 투자 확대를 검토하고 있는 LG이노텍의 추가 인력소요분이 빠져 있다.
여기에다 전자 부문을 제외한 수많은 제조업체들의 인력 수요를 감안하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서울 망우동에 위치한 송곡여자정보고의 최문식 교사는 "현재 230명의 3학년 학생 중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60명 남짓"이라며 "복수 합격을 통보받은 학생들이 어느 곳을 최종 선택할지 기업들을 놓고 저울질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