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벨로루시 국영 벨타통신은 "중국과 벨로루시가 34억달러 규모의 원자력 발전 관련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과 회담하고 난 직후 긴급으로 타전한 것이다. 이 보도에 화들짝 놀란 것은 러시아.벨로루시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중국이 참여하면 러시아는 벨로루시 원전사업에서 빠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벨로루시가 201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원전 건설은 당초 러시아가 맡는 것으로 양국이 합의했다. 러시아의 RIA통신은 "러시아가 이 사업을 중국에 빼앗긴 것은 90억달러의 자금 지원 문제로 티격태격한 탓"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서방 선진국들이 형성한 첨단산업의 독과점 구도를 줄줄이 깨기 시작했다(박한진 KOTRA 베이징센터 부장).그것도 원전 항공기 고속철도 등 웬만한 국가에서는 만들 생각도 못하는 최첨단 분야에서다.

◆원전 수출국 대열에 본격 가세

중국 저장성 싼먼에 위치한 원전 건설 현장.작년 4월 첫 삽을 뜨기 시작한 이곳에 세워지는 원자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3세대 원전인 가압수형 원자로 AP1000.본고장 미국보다 3년 앞선 2013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의 원전을 설치하는 대가로 기술 이전을 요구,1000여명의 기술자가 미국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다.

여기서 습득한 노하우로 AP1000을 중국식으로 개량한 140만㎾급 원자로인 CAP1400을 만들고 있다. "자체적인 지식재산권을 가진 원전기술이 있어야 '원전 강국'의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왕빙화 중국 국가원전기술공사 회장)이다. 중국의 원전 국산화율은 벌써 55%에 이른다. 중국 광둥원자력그룹과 상하이전기 등 58개 원전장비 업체들은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 공동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왕 회장은 "산둥성 룽청시에 CAP1400을 세워 발전을 시작할 2017년이면 중국도 미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한국처럼 자체 기술로 국내 원전을 건설하고 해외 시장에까지 본격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형 여객기 양강 구도 깬다

지난 14일 상하이에서 중형 여객기 ARJ21-700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시험 비행을 한 90석 규모의 이 항공기는 중국 항공공업그룹(AVIC) 상하이 공장에서 시험 생산한 것.중국 중형 여객기로는 처음 지난달부터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안전검사를 받고 있다. 샹펑(翔鳳 · 비상하는 봉황)이란 이름이 붙은 이 항공기는 이미 제너럴일렉트릭(GE) 등으로부터 240대의 주문을 확보했다. AVIC는 "향후 20년 동안 신규 수요가 900여대에 이를 중국 중형 항공기 시장에서 60%를 점유하는 게 목표"라며 "연간 생산 능력을 올해 20대에서 향후 50대로 확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샹펑은 시작일 뿐이다. 중국 상용비행기(COMAC)는 150~250석 크기의 중 · 대형 여객기 C919를 2016년 상용화 목표로 개발 중이다. "개발부터 생산에 이르는 총 투자 규모가 2000억위안(34조원)에 달한다. "(신화통신) COMAC는 지난해 11월 상하이 푸둥국제공항 인근 265㏊에 연간 150대를 생산할 수 있는 조립공장을 짓기로 푸둥신구와 계약을 맺었다.

천진 COMAC 영업담당 주임은 "중 · 대형 여객기를 3000대 공급해 보잉 에어버스와 함께 세계 3대 메이커가 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C919 다음 단계인 차세대 중국 여객기에는 엔진도 중국산을 탑재할 계획이다. COMAC는 이를 위해 상하이연구소 인력을 2000명 증원하기로 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판 보잉'을 만들기 위해 2008년 인수 · 합병을 통해 AVIC와 COMAC 양대 기업 중심으로 항공기 제작 업계를 재편했다.

◆고속철 강국도 노린다

지난 4일 쓰촨성 청두에 있는 AVIC 공장.최고 시속 500㎞의 자기부상열차가 출고됐다. 이 열차는 2002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기부상열차를 상용화한 상하이자기부상수송개발회사에 인도됐다. 다음 달 1일부터 6개월간 열리는 상하이엑스포 기간 중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다이간창 AVIC 엔지니어는 "독일에서 일부 부품을 수입했지만 설계와 제조는 모두 중국 내에서 이뤄졌다"며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자기부상열차를 설계 · 제작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고 자평했다.

중국은 고속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자체 기술을 확보,해외에 진출하는 길을 밟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직전 베이징~톈진을 30분 만에 주파하는 고속철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중국은 2020년까지 42개 노선 1만3000㎞의 고속철도를 깐다는 계획이다. 고속철 길이가 유럽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서는 것이다.

"중국은 국내에 건설 중인 고속철도망과 러시아를 비롯해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지역 17개 국가를 잇는 3개 노선을 2025년까지 건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왕멍수 베이징교통대 교수) 중국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로부터 고속철을 수주한 데 이어 GE에 고속철 기술을 수출하는 식으로 미국 시장까지 노크하고 있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고속철도처럼 시장이 크면서도 기술 융합이 일어나는 첨단산업에서는 중국이 미래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은 보호주의와 불법 기술 유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에어 차이나가 최근 COMAC가 보잉과 에어버스에 대항할 수 있도록 중국산 항공기 구매를 늘리겠다고 밝힌 것이나,프랑스 알스톰에 이어 일본 JR도카이(신칸센 운영사)가 "중국이 외국 고속철도 기술을 훔쳤다"고 비난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