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4시 제주공항에서 약 37㎞ 떨어진 한림항.일반적인 연근해 어선 크기인 25t급 조기배 한 척이 유유히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그물 틈틈이 걸려있는 참조기의 노란배에 통통히 살이 올라 있는 것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출항 한 달 만에 돌아온 '88배양호'에 실린 조기는 13㎏들이로 300상자 규모.인부 30여명이 달라붙어 그물에서 조기를 빼내는데만 5시간 정도 걸린다. 선주 황영복씨(58)는 "해수 온도 상승으로 한류성 참조기들이 북쪽으로 올라간 탓에 어획량은 예년보다 30~40% 줄었지만 크기가 커서 상품성은 좋아졌다"고 말했다.

참조기에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말리면 우리가 반찬으로 즐겨 먹는 굴비가 된다. 통상 굴비하면 '영광 굴비'를 떠올리지만 '제주 굴비'가 국내 굴비의 30~4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제주도는 육지와 떨어져 있는 덕에 중국산이 섞일 우려가 적어 최근 위생시설을 잘 갖춘 굴비 가공공장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제주도 굴비,밥상에 오르기까지

29일 오후 9시: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담긴 참조기들이 위판장으로 옮겨졌다. 인부 50여명이 참조기를 크기별로 나눠 13㎏들이 나무 상자에 담는다. 참조기의 상징인 노란 배가 하늘을 향한 채로 차곡차곡 놓인다. 조기틈에 섞여있던 부세(참조기와 비슷하게 생긴 민어과 물고기)는 따로 모아둔다. 부세는 조기보다 세 배 이상 크다. "참조기가 이 부세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영물이지,비싸서 누가 사먹을 수 있겠냐"는 인부들의 농담이 들려온다.

30일 오전 7시30분:이 항구의 이름을 딴 한림수협 경매의 마지막 순서인 조기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사가 "75미 두 박스(75마리짜리 두 상자)"라고 외치자 중매인들이 '후다판(경매판)'에 숫자를 적어서 경매사에게 건넨다. 경매사가 '800'이라고 적힌 판을 보여주며 "○○수산 80만원"이라고 외치면 해당 업체의 딱지를 조기 상자에 붙여 낙찰을 알린다. 신세계백화점에 들어갈 참조기를 구매하는 81호 중매인 K씨는 "작년에는 50만원이면 샀는데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 중매인과 76번 모자를 쓴 롯데 측 중매인은 매번 경매 때마다 눈치싸움을 벌였다.

오전 9시30분:조기 가공업체 일광수산 공장.위생모,마스크,위생복을 착용한 직원 9명이 조기 아가미에 천일염을 뿌리는 '섶간(염장)'을 한 뒤 조기를 10마리 단위로 묶는 '엮걸이' 작업에 한창이다. 조기를 묶을 땐 위생을 고려해 노끈 대신 전분을 첨가해 특수 제작한 끈을 사용한다. 섶간을 한 차례 더 하고 간이 밸 때까지 3시간을 기다린 후 정제 해수로 세척한다. 3시간을 말린 후 냉동시키면 참조기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굴비로 변신한다.

31일 오후 2시30분:선물세트로 포장된 굴비들을 실은 5t 트럭이 제주항으로 향했다. 기자는 굴비가 탑승한(?) 화물선에 같이 오르지 못하고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왔다. 이 굴비들은 이날 오후 5시30분께 화물선 '퀸 메리호'에 실려 11시 목포항에 도착한 뒤 트럭에 옮겨져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이튿날인 1일 오전 6~7시께 일광수산 이천 물류센터로 들어갔다. 대부분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매장으로 향하며,일부 물량은 가정으로 배송된다.

◆굴비 선물세트 판매 290% 껑충

올 설을 앞두고 굴비 판매는 지난해보다 두세 배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설 선물 예약판매를 시작한 지난달 8일부터 31일까지 굴비 매출은 2000여세트,4억원으로 전년 동기(설 예약판매 개시 후 24일간) 대비 130%가량 올랐다. 매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28일부터 31일까지 4일간 매출은 290%나 뛰었다. 마리당 33㎝(400g 이상)짜리 제주도 굴비 5마리로 구성된 120만원짜리 고가 세트는 준비한 8개가 모두 팔려나갔다. 김충현 신세계백화점 신선식품팀 과장은 "올 판매 목표를 지난해보다 60% 올려 잡았는데 이도 모자라 30%를 추가로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굴비 판매가 급증한 것은 소비심리 회복과 함께 지난해 가짜 법성포 굴비 파동으로 굴비 판매가 급감한 데 따른 '기저효과(base effect)'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참조기 산지 가격은 어획량 감소로 지난해 설 대비 30%가량 올랐다. 한림수협 경매 시세로 100미들이 한 상자는 지난해 25만~35만원에서 올해 35만~40만원으로 뛰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이 사전에 물량을 확보해 일선 매장에서의 판매가는 작년과 같은 수준이거나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제주=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