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는 "파산부는 일이 많고 기업 회생 절차를 담은 도산법은 민사법 가운데 가장 까다로운 법 중 하나로 알고 있다"며 "기업 살리기의 달인이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도산법을 더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하면서 4년 동안 몸에 밴 경제DNA와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와 관련이 깊다. "고등학교 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가경제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경제학과에 진학했고 전공을 잘 살리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법조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그는 대학 4학년이던 2003년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 합격했다. 한때 재경 공무원으로 공직에 몸담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관료로는 법과 경제의 융합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손씨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사법시험에 매달렸다. "불확실한 미래가 불안했다"는 그는 "하지만 확신을 가지고 공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3개의 고시에 연달아 합격하면서 '마담뚜'들의 전화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손씨는 "사법고시보다 행정고시에 붙었을 때 전화가 더 많이 왔다"며 "지금도 사시에 합격한지 모르고 '손 사무관이냐'며 거는 마담뚜들의 전화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사시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1,2차를 동시에 합격한 까닭에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법연수원에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형사변호사실무' 한 과목에서만 A를 받고 전 과목에서 A+를 기록했다. IQ가 140 이상이라는 그는 "집중력이 수석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시험공부를 할 때 기본적으로 잠은 7시간씩 푹 자는 대신 깨어있는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고.손씨는 그러나 "좋아한다기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공부했으며 다시는 시험을 보지 않을 것"이라며 공부가 힘들었음을 고백했다.
그는 "대형 로펌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겠지만 좋은 법관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컸다"며 "모든 사건에 당사자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고민할 줄 아는 판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글=서보미/사진=강은구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