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노사 합의에 따라 연월차 휴가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은행원들이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연말까지 두 달 남짓한 기간에 길게는 10일 이상 휴가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들은 휴가를 보내는 직원들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휴가를 앞둔 직원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선비문화 체험,도자기 체험 등 가족들이 함께 갈 수 있는 레저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또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휴가 기간을 이용해 각종 시험에 대비한 공부를 하는 '열공형'도 많아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내년 2월부터 영업점에서 파생상품을 판매하려면 파생상품 투자상담사 자격증을 따야 해 관련 공부를 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휴가를 이용해 평소 못했던 공부를 하고 회사에 나와 특강도 듣는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연차휴가를 사용하기 시작한 하나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여유있는 모습이다. 일찌감치 연차휴가 의무사용제도를 도입해 급하게 휴가를 소진할 필요가 없고 직원들도 나름대로 휴가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연차휴가를 사용한 결과 재충전과 자기계발에 효과가 크다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휴가로 빠져나간 인력의 공백을 메우는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들도 적지 않다. 은행 지점장 등 부서장들은 장기 휴가를 떠난 은행원들의 업무 공백을 메우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부서별로 알아서 휴가를 가라는 지침만 내린 상태여서 상당수 은행원들이 연차 휴가서를 내고도 별다른 일정 없이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방콕형'이 많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얘기다. 장기간 자리를 비우기 힘든 직원들은 공식적으로는 휴가를 내놓고도 실제로는 회사에 나와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다.

일선 영업점에서는 고객이 불편을 겪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휴가를 떠나는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남은 직원들에게 업무가 집중되는 탓에 일 처리가 늦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들은 본점 직원들을 영업점에 한시적으로 파견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직원 수가 2~3명에 불과한 소규모 지점에서 업무 공백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연차휴가 사용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