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④]"2년만에 수익률 두배 훌륭하죠?"…가치투자 전도사 최준철
"저보고 2000억원을 주고 새롬기술과 같은 회사를 만들라고 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1년 안에 그 정도 회사는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 돈으로 신도리코를 하나 더 만들어 보라고 하면 저는 조용히 그 사람에게 돈을 돌려주고 다시는 그런 제안을 하지 말라고 말해 줄 겁니다."

IT(정보기술) 버블 붕괴로 주식판이 뒤숭숭하던 2001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최준철씨(33ㆍ사진)는 가치투자 인터넷사이트 뉴아이에서 '낭중지추K'라는 회원의 신도리코 분석 글을 읽었다.

21세기들어 주식시장에서 인터넷이나 네트워크라는 수식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대접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낭중지추K는 전통적인 제조업체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복사기 제조업체 신도리코에 대해 '흙 속의 진주'라며 순이익 연 30% 성장이 기대되는데다 배당률도 8%에 달해 "절대로 빼앗기지 말아야 할 주식"이라고 평가했다.

평소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 같은 세계적인 가치투자자들에 대한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가치투자를 연구하고 있던 최씨는 당장 그 글에 흥미가 생겼다. 최씨 역시 역시 '엔젤'이라는 필명으로 가치투자 사이트에서 활약하던 회원 중 한명이었다.

온라인 채팅을 통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가치투자에 대한 서로의 철학이 잘 맞고 보유 종목까지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금세 의기투합했다. 그러다 아예 직접 만나자며 '번개팅' 약속까지 잡았다.

그런데 우연히도 두 사람 모두 서울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데다가 1976년생으로 나이도 같은 게 아닌가. 게다가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였던 이창용 교수(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수업을 함께 듣고 있던 사이이기도 했다.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 전문서인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 을 출간해 '가치투자의 전도사'로 떠오른 VIP투자자문 공동대표 '엔젤' 최준철 대표와 '낭중지추K' 김민국 대표의 첫 만남이었다.

◆ 지금이 가치투자 적기

<한경닷컴>이 최준철 대표와 김민국 대표를 만난 곳은 서울 역삼동 VIP투자자문 사무실이었다. 사실 출근 전후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루 종일 기업탐방이나 미팅에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탓이다. 최근에는 변동성이 큰 증시 흐름에 대응하느라 특히 바쁘다.

"올해는 가치투자자들이 뚝심을 지키기가 참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1, 2분기에는 테마주 위주로 강세장이 형성돼 중소형주들이 급등했고, 3분기에는 IT와 자동차주가 주도주가 되면서 지수를 끌어올렸죠."

반면 이들이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음식료, 유통, 섬유, 정유 등 전통적인 내수주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④]"2년만에 수익률 두배 훌륭하죠?"…가치투자 전도사 최준철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런 시기야말로 가치투자가 빛을 발하는 때라고 할 수 있다. 코스피 지수는 저점에서 상승곡선을 그리고 1700에 근접했지만, 주도주를 제외한 소외주 중에서는 아직 '먹을 만하고 오를 만한' 종목이 많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지금 음식료 업종의 경우 IT나 자동차주에 비해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이 절반도 안된다"며 "기업 가치에 비해 싼 주식을 선호하는 가치투자자들이 사기에는 매우 좋은 시기"라고 설명했다.

VIP투자자문은 최근 최소 투자 유치금액을 1인당 5억원에서 2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지금 같이 가치투자하기 좋은 시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는 지수가 2000선을 달리던 2007년과 비교된다. 당시 VIP투자자문은 아예 투자자들의 가입을 받지 않았다.

"증시가 워낙 호황이라 투자자들의 문의가 굉장히 많았는데요. 냉정하게 생각해 볼 때 지금은 들어갈 적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가치투자의 입장에서 살펴봐도 살 만한 종목이 많지 않았습니다. 조금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가입을 거의 받지 않았죠. 그때 투자자들을 많이 받아들였더라면 운용자금은 크게 늘어났겠지만, 수익률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겁니다."

◆ 설립 이후 매년 시장 수익률 웃돌아

두 사람은 27살인 2003년 VIP투자자문을 설립했다. 일임매매를 통해 굴리는 펀드의 운용규모는 현재 3000억원에 달하고, 가입자수도 220명을 넘어선다.

가입시에는 투자자들과 직접 일대일 상담을 통해 일일이 가치투자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상승장에서 다른 성장형 펀드에 비해 수익률이 부진할 수도 있다는 점과 3년 이상 장기투자를 필요로 하는 펀드 성격 때문이다.

고객들 중에도 설립 당시부터 함께 해온 5~6년된 투자자들이 많다.

이들은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는 길게 봤을 때 수익률 상위권을 유지하는 펀드가 목표"라고 강조했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④]"2년만에 수익률 두배 훌륭하죠?"…가치투자 전도사 최준철
설립과 동시에 설정된 대표 펀드인 'VIP사모주식형펀드'의 수익률은 212%.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117% 상승한 것에 비하면 두배 가까이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것이다.

연 수익률로 봐도 적게는 3%p(포인트)에서 많게는 40%p 가까이 줄곧 코스피 지수 상승률을 앞질러왔다. 특히 2007년과 같은 강세장이나 지난해 급락장에서도 변합없이 시장대비 초과 수익률을 올리고 있어 눈에 띈다.

수익률의 비결은 철저한 가치투자다.

일반 주식형 공모펀드의 경우 삼성전자나 포스코 등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를 기본적으로 시가총액 비중에 준할 정도로 편입하고, 전망에 따라 작거나 많게 조정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VIP사모주식형펀드'를 포함해 VIP투자자문에서 운용중인 펀드에는 삼성전자가 단 한 주도 포함돼 있지 않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한다고 하는 다른 대형 IT주들도 거의 편입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대형주는 시장에 효율적으로 움직인다"며 "실적 전망이 좋거나 나쁘면 주가도 함께 빠르게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업황 변화가 심한 IT주의 경우 변수가 많아, 아무리 기초체력이 좋은 종목이라도 외풍에 자유로울 수 없다.

김 대표는 "부동산으로 따지면 모멘텀을 추구하는 성장투자자들은 '분양권 전매투자자'이고, 가치투자자들은 '경매투자자'"라고 비유한다.

분양권 전매투자는 프리미엄을 노리는 게임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인기 물건을 사서 프리미엄을 받고 재빨리 수익을 챙긴다.

반면 경매투자자는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물건을 할인해서 싸게 산다. 이들이 선호하는 곳은 북적북적한 '떴다방'이 아닌 썰렁한 법원이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④]"2년만에 수익률 두배 훌륭하죠?"…가치투자 전도사 최준철
"기술적 분석에 근거한 성장투자자들은 기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행동을 보려고 합니다. 하락중인 종목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어서 사람들이 파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할인되는 값에 사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치투자자들은 하락할 때 주식을 산다. 각종 차트 대신 전자공시를 들여다보며 종목을 고르며, 주로 소비주기가 빨라 수요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품목에서 시장지배력과 가격결정력이 있는 회사들을 선호한다.

최 대표와 김 대표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는 종목은 동서, 롯데삼강, 웅진코웨이, 아모레퍼시픽처럼 안정적으로 기반을 다져온 대표 내수주들이 대부분이다.

얼핏 보면 시장에서 별로 관심이 없고, 거래량도 많지 않은 영 '심심한' 종목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기간에 높은 수익은 내지 못해도 3~4년마다 한번씩 가치주가 재평가되는 시기가 있다"면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종목일수록 수익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면 동서의 경우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70%에 달하기 때문에 유통 물량이 적고 하루 거래량도 1만주가 안될 정도로 미미하다. 주가도 급락이나 급등 없이 완만하게 움직이는 편이다. 남들 오른 만큼 올라주지 않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 동서의 주가는 시나브로 상승해 지난 2003년 액면분할 이후 8000원대에서 최근 3만3000원대까지 4배 넘게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30만원대에서 70만원대로 2.5배 상승에 불과했다.

◆ 국내 최초 가치투자 전문서인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

최 대표와 김 대표는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같은 제도권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다. 이들의 투자 스승은 워런 버핏 같은 세계적인 투자자의 기법을 다룬 책이었다. 여기에 전공을 살려 기업분석에 응용했다.

이들이 증시에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2001년 6월 수련삼아 시작한 'VIP펀드' 덕분이었다. 온라인에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이 함께 SMIC(현 서울대투자연구회)에서 운용한 이 펀드는 2003년 설정된 'VIP사모주식형펀드'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IT 버블을 계기로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가치투자는 '마이너'로 취급받던 상황이었어요. 차트를 통한 기술적 분석이 인기를 끌었지만 일일이 기업들의 재무재표를 분석해가며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요. '가치투자라는 게 미국에서나 가능하지 한국에서는 안 통한다'는 선입견이 있었죠."

두 사람은 한국에서도 가치투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VIP펀드'를 공개펀드로 운용하기로 했다. 매달 편입종목 아이디어와 매매 상황, 수익률, 회의 내용, 분석 리포트 등의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투자동호회 회원들과 지인들의 자금을 모집해 마련한 천여만원으로 시작한 VIP펀드는 그 후 2년 동안 117%의 수익률을 올리며 증권가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 대표는 "가치투자로 짧은 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운 좋게도 9.11 사태 때 폭락한 주식들을 쓸어담은 것이 수익률 상승에 일조를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펀드 운용과 함께 그 동안 모아온 자료를 바탕으로 가치투자에 대한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했다.

국내 실정에 맞는 가치투자 서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초보 투자자들에게 가치투자를 쉽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전문적인 용어는 배제하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쓰는 것이 목표였다.

책 집필을 위해 선릉역 근처에 있는 학교 선배의 벤처회사 사무실 한켠을 빌렸다. 게임 개발자들과 어울려 햄버거와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날밤을 새가면서 방학기간 3개월 정도를 꼬박 집필에 투자했다.

"기초편집까지 다 된 상태로 모양새가 만들어진 책을 갖고 출판사들을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학생에 불과한 우리가 쓴 책을 출간해주겠다는 데가 없더군요."

여러 출판사들의 문턱을 들락거린 끝에 간신히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출간이 결정됐다.

이렇게 나온 책이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으로, 국내 최초로 '가치투자'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이었다.
[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④]"2년만에 수익률 두배 훌륭하죠?"…가치투자 전도사 최준철
두 사람은 이 책의 2004년 개정판 서문에서 "한국형 가치투자 전략은 저자인 저희 자신도 놀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몰고 왔습니다. 주식이 대박을 노리는 복권이 아니라 기업의 일부이고, 주식투자자는 단순한 트레이더가 아니라 사업가라는 개념에 대해 많은 분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이야기하시면서 공감해주셨습니다" 라고 밝힌다.

이들은 책 출간에 그치지 않고 가치투자 전문지인 '대학투자저널'과 웹사이트 '아이투자'를 만드는 등 전방위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성과는 달게 나타났다. 이들의 투자철학에 공감하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예 "돈을 맡길테니 굴려달라"는 문의도 수없이 들어왔다.

최 대표와 김 대표는 장고 끝에 투자자문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국내 최초의 학생 금융벤처 'VIP투자자문'이다.

2003년 운용을 시작한 'VIP사모주식형펀드'는 100억원이라는 자금을 가지고 설정을 시작했다. 일반 공모 주식형 펀드들도 웬만큼 인지도를 쌓지 않으면 설정액 100억원 돌파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볼 때 이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짐작할 수 있다.

젊은 나이에 동업을 시작한 만큼 주위에서는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둘은 '종목에 대한 의견다툼' 외에는 큰 충돌이 없었다고.

"가치투자라는 투자철학을 공유하면서도 관심업종이 서로 조금씩 달랐던 것이 오히려 강점이 됐던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시작해 주식시장에서 10년 동안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계속 토론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검증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만약 투자자문을 설립하지 않았더라도 주식과 관련된 일을 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주식 투자가 적성에 맞고 보람을 느낀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그 동안 증권사 스카웃도 많이 받았지만, 기관에 소속된다면 자신들의 방식으로 가치투자를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사했다고 한다.

"지금처럼 우리를 믿어주는 투자자들과 함께 투자 신념을 지켜나가면서 한국 증시에서 가치투자가 진정 '가치있는' 투자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다"는 것이 젊은 두 사람의 포부다.

글ㆍ사진=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