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세계 경제 신질서를 주창하고 나선 국가는 경제위기 진원지인 미국이다. '지속 가능하고 균형 잡힌 성장'을 간판으로 내걸었다. 미국은 해마다 1조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적자를 무릅쓰고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 역할을 해왔다. 그 덕분에 대미 무역흑자를 내면서 성장한 중국 등 수출주도형 국가들이 이젠 내수를 키워 세계 소비시장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요구다.
미국은 세계 무역구조 불균형(imbalance)을 해소(rebalancing)하기 위한 방안으로 '동료감시제'를 내놨다. 각국이 내수와 무역의 균형정책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평가하자는 것이다. 미국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 6개월마다 이를 조사해 어기는 국가에는 정책권고토록 하는 제안이다.
영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전반적으로는 미국의 제안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미국에 대해 최대 무역흑자국인 중국은 원칙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속적이고 균형 잡힌 세계 경제 성장을 위한 거시경제 정책 조율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독일은 구속력이 없어야 한다며 비판적인 입장이다. 브라질은 모호한 제안이라고 반대한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페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미국이 최후의 세계 소비시장 역할을 맡지 않겠다는 의지"라면서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심슨 존슨 미국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좋은 제안이긴 하나 이빨(구속력) 없고 의미없는 선언에 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위기 주범인 금융권을 강력히 규제하고 감독하자는 아젠다에서는 입장이 더욱 첨예하게 엇갈린다. 프랑스와 독일은 금융권의 과다한 보수에 상한선을 두고 규제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합리한 보수체계가 금융사 임직원들의 탐욕을 불러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합의에 실패하면 단독으로 규제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금융사의 자기자본비율을 강화하자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내년 말까지 새 기준에 합의하고 2012년 발효시키자고 주장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불공평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씨티그룹 등 미국 대형 은행들은 위기 직후 구제금융 등으로 자본을 대거 확충했으나 유럽 은행들은 확충 정도가 낮아 일률적인 잣대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IMF 내 의결권 조정은 세계 경제 권력의 이동을 의미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지난 런던 회의에서 2011년까지 의결권을 조정하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조정 방안을 둘러싸고 이견을 낳고 있다.
현재 의결권은 선진국 57%,개도국 43%로 분포돼 있다. 중국 브라질 등은 개도국의 의결권을 7% 높여 50 대 50으로 맞추자는 주장이지만 선진국은 5%만 상향하자고 맞서고 있다. 24개국이 맡고 있는 이사 자리 역시 유럽 쪽을 줄이고 개도국 쪽을 늘리자는 미국 측의 제안에 유럽 국가들이 반대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배격과 지구 온난화 대응 문제는 대다수 국가가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미국은 석유 등 화석연료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자는 안을 제시하고 지지세를 모으고 있다. 위기에 대응하느라 돈을 풀고 금리를 인하한 확장적 재정 · 통화정책을 거둬들이는 출구 전략을 마련하고 이행 시기를 상호 조율하자는 데도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 모든 의제에 완전히 합의하기가 쉽지 않고,합의 사항을 앞으로 이행하고 점검해야 한다는 점에서 4차 회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4차 회의가 열린다면 차기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에서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