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외곽에 자리잡은 후리함 항구 인근의 한 주유소.검은색 차체에 커다란 녹색 나뭇잎이 그려진 택시 한 대가 들어섰다. 바이오 가스와 휘발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하이브리드 택시다. 이날 주유기에 고시된 휘발유 가격은 ℓ당 12.70크로나(약 2178원).나란히 붙은 바이오 가스 요금은 N㎥(바이오 가스를 측정하는 부피 단위)당 11.29크로나(약 1936원)로 적혀 있었다. 휘발유 1ℓ와 맞먹는 바이오 가스 1N㎥ 요금이 더 싸다. 셀프 주유를 위해 차에서 내린 택시 기사 스탄리 세무가비씨는 바이오 가스를 선택했다. 그는 "바이오 가스는 휘발유보다 보통 10~15% 정도 싸고 냄새가 나지 않아 좋다"며 "하이브리드 차량은 일반 자동차보다 2만~3만크로나 더 비싸지만 유지비가 적게 들어 1년 반이면 본전을 뽑는다"고 설명했다.



'쓰레기 에너지'로 달린다

스웨덴에서 쓰레기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폐(廢)목재나 음식물 쓰레기 등은 바이오 가스를 추출하는 에너지원이다. 이를 포함한 재생에너지가 전체 에너지 공급의 28%를 차지한다.

음식물 찌꺼기에서 추출한 바이오 가스 용도는 다양하다. 발전용 · 난방용 · 차량용으로 두루 쓰인다. 그 중 가장 활성화된 것이 차량용 바이오 가스.값이 휘발유보다 싸다. 이 연료로 운행하는 자동차는 주차요금이나 도심 진입료 등을 내지 않아도 된다.

스톡홀름에서 바이오 가스 붐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대중교통이다. 시내를 주행하는 택시의 60%가 친환경 차량이다. 친환경 택시는 녹색 나뭇잎이나 노란색으로 구분돼 있어 승객들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시내버스는 이미 바이오 가스나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바이오 에탄올 차량으로 모두 바뀌었다. 친환경 에너지 차량 보급률은 2005년 5.2%에 불과했으나 올 상반기 20% 정도로 늘었다.

안데스 투브린드 스칸디나비안 바이오 가스(SBF · 바이오 가스 공정설계 및 시공 전문업체) 사장은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의 36%는 친환경 하이브리드 차량"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가스는 음식물 찌꺼기나 가축 분뇨,정화조에서 나오는 슬러지(하수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를 일정한 온도에서 숙성 ·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메탄 성분의 친환경 에너지다. 쉽게 말해 '쓰레기 에너지'다. 이산화탄소,유황 등의 불순물을 제거해 순도를 97% 수준으로 높여 차량 및 가정용 연료로 쓴다. 음식물 쓰레기 1㎦에서 추출하는 바이오 가스로 1200㎞ 정도를 운행할 수 있다.

바이오 가스를 추출하고 난 뒤 남은 찌꺼기는 다시 농작물의 비료로 사용한다.

난방용 에너지로도 각광

스톡홀름 남동쪽으로 6㎞ 떨어진 함마르비 신도시.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다녀간 뒤 국내에 잘 알려진 친환경 신도시다. 여기에서도 쓰레기는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일반 가정에서 배출한 오 · 폐수의 슬러지로는 바이오 가스를 만들어 낸다. 하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은 지역 냉 · 난방용으로 사용한다. 에릭 프뢰덴털 함마르비 환경정보센터 소장은 "함마르비의 재생에너지 활용은 전체 에너지 소모량의 최대 50%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며 "스톡홀롬 주변에 함마르비 모델과 같은 신도시 3곳을 더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단지를 둘러보다 마침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쓰레기 수거원이 인도 바닥에 설치된 사각형의 맨홀 뚜껑을 열자 지름 50㎝가량의 파이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민들이 분리수거를 통해 버린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가 모인 저장탱크와 연결된 파이프다. 쓰레기 수거차량은 이 관을 통해 진공 흡입관으로 쓰레기를 빨아들인 뒤 스톡홀름 남부의 훼그달렌 열병합발전소 등으로 옮긴다. 스톡홀름 최대 쓰레기 수거업체인 레스타(Resta) 의 망누스씨는 "일주일에 한 번 쓰레기를 수거한다"며 "음식물 쓰레기는 바이오 가스 생산설비로 보내고 일반 생활쓰레기는 소각장으로 보내 난방용으로 쓴다"고 설명했다.



액화 바이오 가스 개발도 한창

스웨덴이 쓰레기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다. 오일 쇼크 때까지만 해도 스웨덴의 주요 에너지는 석유였다. 석유의존도가 70%에 달했다. 이런 상태로는 곤란하다고 판단한 스웨덴 정부는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에 나섰다.

스웨덴이 석유의 대안으로 찾은 것이 쓰레기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스웨덴에는 벌채나 목재를 가공할 때 나오는 나무 찌꺼기가 많다. 귀리,밀 등 농작물 수확 과정에서 버려지는 지푸라기 등도 허다했다. 이를 가공해 바이오 매스의 일종인 '펠릿'을 만들어 지역난방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바이오 가스를 만들어낸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스웨덴의 석유의존도는 30% 미만으로 떨어졌다.

최근엔 바이오 가스를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2005년 바이오 가스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벤처기업인 SBF사는 최근 기체 상태의 바이오 가스를 액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액화 바이오 가스는 주유소까지 일일이 관을 연결하지 않아도 공급할 수 있어 일반 정유사의 공급시스템과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SBF는 한국 시장에도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아니카 안데숀 한국총괄팀장은 "한국이야말로 바이오 가스 활용의 최적지"라고 강조한다. 음식물 쓰레기가 많은 데다 각 가정에 설치된 가스관의 인프라를 활용할 경우 추가 설비 투자를 크게 절감할 수 있어서다. SBF는 한국의 시장 잠재력을 감안,최근 울산 용연하수처리장에 음식물 처리 및 하수 슬러지 자원화 시설을 짓고 있다. 오는 10월부터 이곳에서 생산되는 바이오 가스를 SK에너지 울산공장에 5년간 공급할 예정이다.

스톡홀름 · 함마르비(스웨덴)=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