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달 방송 수신기 제조업체 A사의 전 대표에 대해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재직 시절 A사에서 횡령한 액수가 수십억원에 달해 범죄의 중대성이 크고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그러나 "범죄 사실 등에 대해 다퉈볼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측은 이에 대해 영장 전담 판사가 A사 대표 변호사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점을 들어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형사 사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율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법원과 검찰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검찰 측은 영장 발부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갖는 반면 법원 측은 공판중심주의 강화와 불구속 원칙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16일 대법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1심 법원에 청구된 구속영장 2만9845건 가운데 7429건이 기각돼 발부율은 74.9%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5.7%)에 비해 0.8%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2005년 87.2%였던 구속영장 발부율은 2006년 83.6%,2007년 78.2%,2008년 75.6%에 이어 올 상반기까지 4년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서는 A사 전 대표를 비롯 태광실업 세무조사 무마 로비 혐의를 받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고(故) 장자연씨 관련 문건을 유포한 혐의의 연예기획사 대표 유모씨,공금 횡령 혐의를 받은 최열 환경련 대표,마약투약 혐의의 가수 김모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줄줄이 기각됐다.

이에 대해 검찰 일각에서는 "법원이 검찰을 길들이기 위해 일부러 발부율을 낮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법원행정처에서 영장기각을 독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판사들도 이 기회에 전관이나 지인이 변호를 맡으면 선심쓰듯 영장을 기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 측은 그러나 "법원행정처에서 기각을 독려한다거나 이해관계에 따라 기각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검찰-법원 간 갈등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서울동부지법은 올초 치러진 B협동조합의 조합장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J씨 등 후보자 5명에 대해 동부지검이 청구한 영장을 지난달 초 두 번이나 잇달아 기각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피의자의 변호인 중 동부지원 판사 출신이 끼어 있어 전관예우가 아니냐"고 주장했고,법원은 "검찰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영장 발부율이 낮아지자 검찰은 영장기각에 대해 항고할 수 있는 영장항고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권태형 서울중앙지법 공보판사는 이에 대해 "피의자의 지위를 불안하게 할 소지가 있어 영장 항고제 도입은 무리다"고 말했다.

임도원/서보미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