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강력한 감독기능을 부여하는 금융규제감독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시스템 리스크 예방 △규제·감독체계 단순·투명화 △소비자보호 기능 강화 등을 위해 FRB에 강력한 감독기능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번 금융감독 체계 개편안은 6개월 간의 준비를 통해 마련됐다. 미국 언론은 1930년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규제 체계 개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개편안은 곧 의회에 제출돼 심의를 받을 예정이며 오바마 행정부는 연내 의회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금융위기의 원인이 "월가(금융)에서부터 워싱턴(정치), 메인스트리트(제조)에까지 뿌리를 내린 `책임지지 않는 문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930년대 대공황에 마련돼 유지되고 있는 현재의 금융규제 체계로는 빠르게 발전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21세기 경제 시스템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하며 새로운 규제·감독체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 개혁안의 목표는 탐욕과 무모함이 아니라 근면과 책임감, 혁신에 대해 보상이 이뤄지는 시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정부는 시장의 혁신을 가로막는 것을 원치 않으며 단지 감독자로서의 역할만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안 주요내용

오바마 행정부는 이날 금융규제·감독체계 개편안의 내용을 공개했다.

먼저 재무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가칭 '금융서비스감독위원회'를 신설한다. 이 위원회는 FRB와 함께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리스크를 감시·감독하게 된다.

FRB는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해 강화된 감시 기능을 부여받고 이들 회사의 부실 징후를 초기단계에서 감지, 통제하게 된다. 또 대형 금융회사의 자본 및 유동성 기준도 이전보다 대폭 강화된다.

이는 미국 내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대형 금융회사 한 곳이 부실에 빠지면 경제전반에 가져오는 충격을 피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으로 파산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부각된 것.

이 같은 악순환이 거듭되면 실적을 중시하는 대형 금융회사들이 과도한 위험투자를 감행해 경제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자본·유동성 기준을 더욱 강화하고 FRB가 감시·감독을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보험사와 투자은행(Investment Bank), 증권사 등 비(非)은행금융기관이 부실에 빠지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해당 금융회사를 인수해 정리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파산 은행을 접수해 자산을 정리하고 예금자를 보호하는 기능을 가져온 것이다.

또 재무부 산하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과 연방통화감독청(OCC)을 통합, 가칭 '전국은행감독청(NSS)'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신용디폴트스와프(CDS)와 같은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포괄적인 규제·감독 체계를 도입해 이들 상품에 대한 과도한 투자·거래가 금융회사의 회계장부에 드러나지 않는 부실로 커지는 것을 막도록 했다.

머니마켓펀드(MMF)에 대한 규제를 개선하고 헤지펀드의 등록제를 실시하며,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새로운 규제방안도 도입키로 했다.

미 정부는 독립적인 '소비자금융보호기구'를 만들어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들에게 단순,투명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게 하고, 상환능력이 없는 소비자들에게 무분별하게 주택담보대출이나 카드대출을 승인해 개인파산을 초래하는 일을 막도록 했다.

이날 미 정부의 발표 이전에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를 통합하는 방안도 거론됐으나 정계 등의 반발로 이번 개혁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의회 및 시장의 반응

이번 개혁안은 의회에서 10여차례의 청문회와 수개월간의 심의를 거칠 전망이다.야당인 공화당은 이미 자체 개선안을 제시했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이번 개혁안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무척 공감하지만 금융산업에 정부의 영향력을 과도하게 행사해 시장의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젭 헨스얼링 하원의원도 "잘못된 진단으로 잘못된 처방을 내렸다"며 "오바마 정부는 규제완화에 모든 책임을 돌렸지만 문제는 규제완화가 아니라 멍청한 규제였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마크 워너 상원의원은 "코끼리가 춤추면 풀밭이 망가진다. 이미 풀밭이 망가진 상황에서 더 큰 코끼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정부의 감독권 확대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소비자단체에서는 이번 개혁안을 환영했으나 금융회사들은 "투자자 보호 조항이 없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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