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상의 대가'는 약간의 두려움이 묻어난,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정운(26)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16세가 되던 해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사진이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14일자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한경닷컴은 관상을 소재로 포털사이트와 일간지에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 '꼴(허영만 작)'의 감수를 맡고 있는 '관상의 대가' 신기원(70·남) 선생을 찾아가 사진 속 인물의 관상을 물었다.
15일 정오께 서울 노원구 자택의 '신기원 관상학당'에 들어서자 앞서 찾아온 손님 두 명이 상담을 받고 있었다. 베란다에 잔뜩 쌓인 한약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기실'격인 거실에는 신 선생이 감수를 맡은 만화 '꼴' 네 권이 널려있고 밑줄이 잔뜩 그어진 신문들이 쌓여있었다. 벽장에는 유명인물들의 모습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비디오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거실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 대신 약봉지 몇 개가 담겨있었다.
한 시간 남짓 기다린 끝에 신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안경을 코 끝에 내려쓰고 단추 두어 개를 푼 셔츠 차림의 신 선생은 성성한 백발을 제외하면 만화 속에 묘사된 인물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들어와 앉으시라"며 기자를 반겼다.
그러나 기자 명함을 건네 받고 조금 굳어진 표정을 보이던 신 선생은 사진을 내보이는 순간 돌변했다. "어떻게 이런 것을 물을 수 있냐"고 대뜸 화를 내며 거칠게 호통을 쳤다. 그는 "이 인물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으니 돌아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노기 어린 목소리였다.
"몇 마디라도 해달라"고 간청했다. 신 선생은 "이 사람의 관상을 본격적으로 말하면 아주 무서운 얘기를 해야 한다"며 "내 신변에 위험이 닥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말을 하느냐"고 완강하게 버텼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민한 반응이었다.복잡한 표정과 거친 목소리.더 이상 취재가 어려운 듯 보였다.
무릎을 꿇은 채 기다린 지 20여분이 지났을까.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틴 끝에 짧게나마 총체적인 관상을 평가하는 '상평'을 들을 수 있었다.
신 선생은 접혀 있던 (김정운 추정 인물의) 사진을 바르게 폈다. 손끝에서 망설임이 느껴졌다.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한 사진 속 인물이 김정운이라는 사실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그는 사진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현재 나이는 26세로 이 사진은 10년 전의 것'이라고 설명하자 "그런 건 상관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사진 속 인물을 가리키며 "아주 대담하고 똑똑한 인물"이라고 운을 뗐다."큰 일을 할 사람"이라는 말이 이어졌다.두려움이 묻어나는 듯한 목소리였다. '큰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묻자 "그런 것은 말할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그 대신 신 선생은 또렷한 눈빛으로 "자기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못지 않다. 밀리지 않는다. (후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또 "많은 것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결단성이 아주 강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매우 영리하며, 일을 결정하고 실행할 때는 과감하게 할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최근 후계자 문제로 주변 인물의 숙청, 암살 시도 등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장남 김정남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관상이 매우 탁하다"고 평가했다. 또 "장ㆍ차남에 비해서 김정운의 관상이 월등하다"며 다른 두 형제에 대해서는 "김정운과 비교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신 선생은 "김정운이 '3대 세습'을 통해 북한을 통치하게 될 경우 어떨 것으로 보이느냐"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느냐" 등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이 얘기를 하는 것이 '천기누설'까지는 아니지만 더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호했다.하지만 떨리는 목소리였다.이후 "(더 이상) 대답해 줄 수 없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버티고 있어도 더는 할 말이 없다"며 또다시 호통을 쳤다.그의 높아진 언성에 손님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거실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전날 전화통화에서 취재를 사양하면서도 "오전 중 한번 와 보라"고 말했던 안주인도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다른 관상가를 소개시켜줄 수 있냐는 질문에는 "이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관상가는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다"며 "아주 보기 어려운 상"이라고 말했다. 신 선생은 또 지난 18대 대통령선거를 언급하며 "그때 내가 될 거라고 했던 사람이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는 재떨이를 뒤져 꺼낸 담배꽁초를 황망히 피워 물었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거실로 나서자 기다리던 손님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기자를 바라봤다. 안주인은 한사코 복채를 받지 않았다.신 선생과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편 다른 유명 역술인들은 김정운의 앞길이 '험난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백종헌 정암철학관 원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운이 권력을 잡으면 파란만장한 역경을 감내해야 하며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백 원장은 장남인 김정남에 대해서는 “정운보다는 낫겠지만 그 역시 권력을 오래 이어나갈 수 있는 상은 아니다"며 "'껍데기 리더'로 부각될 수는 있겠지만 실세로서의 역할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 전 사진으로 관상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점치는 것은 무리라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2016년 이전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점쳐 관심을 모았던 노해정 사주아카데미 대표는 "오늘과 내일의 관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최근의 얼굴을 보더라도 현재 상황이나 향후 리더십을 전망하기는 어렵다"며 "하물며 10년 전 청소년기의 흐릿한 얼굴 사진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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