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근의 史史로운 이야기] 子貢의 三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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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하던 제자 안회와 자로를 먼저 떠나보내고 쓸쓸해하던 73세 스승의 임종을 끝까지 지킨 것은 제자 자공이었다. 그는 스승의 3년상을 마치고 제자들이 다 떠났을 때도 혼자 남아 3년 동안 더 시묘살이를 했다. 자공은 훗날 스승을 공경하는 제자의 귀감(子貢敬師)으로 추앙됐고, 안회 자로와 함께 공자의 3대 제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생전의 스승은 자공에게 냉엄했다. 번지르한 말을 많이 한다고 구박하기 일쑤였다. 자공이 남을 비평할라치면 "너는 현명한가 보구나, 나는 그럴 겨를이 없는데"라며 대놓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공자가 3대 제자를 나란히 평한 말이 있다.
"자로는 거칠고, 안회는 도를 좋아하나 가난하다. 자공은 본분을 지키지 않고 재물을 불리는 데 열심인데, 투기를 하면 곧잘 들어맞는다(賜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논어 선진(先進)>
육예(六藝)가 중심인 공자학단의 커리큘럼 어디에도 이재(理財)는 없다. 그런데도 자공은 선견지명이 있었던지 물건을 사쟀다가 팔면서 많은 부를 쌓았다. 훗날 북송의 정자(程子) 형제는 이 구절에 주를 달고 "자공의 이재는 요새 부자들의 축재와 다르고, 젊었을 적 도를 몰랐던 한때 일"이라고 대선배를 변명하고 있지만, 아무튼 자공의 재물이 공자학단의 든든한 재원이 됐음은 물론이다. 사마천도 《사기》 화식열전에서 "공자의 명성이 천하에 퍼진 것은 자공이 애쓴 덕분"이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공자 사후 학단은 자연 자공이 중심이 됐고, 여기저기서 '스승보다 낫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자공은 스승을 깎아내리는 이런 말이 참람되다며 세 번이나 부인했다.
A. 대부 자복경백이 조정에서 '그대가 공자보다 현명하다'는 의론이 있었다고 전하자 자공이 말했다. "나는 어깨 높이밖에 안 되는 담장이라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스승은 아득히 높은 담장이라 대문을 들어서지 않고는 집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말이다. "
B. 대부 숙손무숙이 공자를 험담하자 자공이 말했다. "그만해라. 다른 현자는 언덕과 같아 뛰어넘을 수 있지만, 공자는 일월(日月)이라 넘을 수 없다. 사람이 연을 끊고자 한들 해와 달이 무슨 상처를 받겠는가. "
C. 공자보다 나은데도 너무 겸손해 하는 선생에게 제자 진자금이 불만을 터뜨렸다. 자공이 꾸짖었다. "말은 조심해야 한다. 내 스승 공자는 하늘과 같아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없는 분이다. " <논어 자장(子張)>
자공 같은 제자를 둔 스승은 행복하다. 그럴려면 제자다운 제자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승이 스승다워야 한다. 요즘 학교 교육의 문제는 교단의 붕괴보다 사제(師弟)관계의 해체가 더 심각하다고 한다. 선생님은 선생님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갈리고 사랑과 존경은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단다. 선생님들 간에는 아이들 걱정보다 부동산과 재테크가 화제이고, 아이들은 그런 선생님을 돈받고 문제풀이 해주는 학원선생님보다 못하게 여긴다면 이건 안 될 일이다.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교사의 날도 아닌데 학교 문을 닫아거는 결벽증은 작은 의(義)일 뿐이다. 교문을 열되 '스승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다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 선생님들의 삼불(三不)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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