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를 틈타 세계적으로 조직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는 공공사업 진출을 검토하는가 하면 서민을 대상으로 사채놀이를 확대하고 있다. 은행대출이 줄면서 마피아에 기대는 기업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호주에선 최근 백주 대낮에 도심 한복판에서 조직폭력배들 간의 총격사태가 벌어져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독일 등에선 극우파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각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증오하는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양지로 나오는 마피아

이탈리아 정보기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인 경기침체는 마피아 조직이 이탈리아 경제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마피아는 마약밀매와 각종 불법활동으로 거둬들인 돈으로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 매수에 적극적이다. 마피아는 통상 유흥업소 식당 행상 심지어는 장례식장에서도 보호세 명목의 '피조(Pizzo)'를 받고,마약 무기밀매 성매매 등의 불법활동으로 수입을 올리는데 최근엔 법인으로 등록하고 합법적으로 관광업 소매업 부동산업 등에 뛰어들고 있다.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 여파로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자 마피아 조직이 운영하는 사채를 쓰는 서민도 급증했다. 이탈리아 중소 상인연합체 콘페세르센티에 따르면 현재 18만개의 업체가 서민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으며,이들 중 대다수는 마피아 조직과 연계돼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대통령이 올해 -3% 역성장이 예상되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공공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최근엔 마피아들이 공공사업에까지 진출할 것이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4대 마피아 조직은 △칼라브리아 지방의 '은드라게타' △시칠리아의 '코사노스트라' △나폴리의 '카모라' △푸글리아의 '사크라코로나우니타'로 알려져 있다. 이들 4대 조직의 연간 수입을 합치면 약 1300억유로(230조원)로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7%에 달한다. 수입 규모로 보면 이탈리아에선 마피아가 '1위 기업'인 셈이다. 비용을 제외한 순수익도 700억유로(125조원)에 이른다.

◆실직 청년 조직범죄도 기승

최근 호주의 대도시 캔버라와 시드니에선 조직폭력 집단 간 세력다툼에 따른 총기난사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24일엔 캔버라의 한 주택가에서 남자 2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사망자 가운데 1명은 호주 최대 폭력조직인 '레벨스 모터사이클 클럽' 조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폭력조직은 지난해 10월 시드니에서 라이벌 조직인 '반디도 모터사이클 클럽'과 대대적인 총격전을 벌여 도시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시드니에서도 최근 10여건 이상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0일엔 시드니 공항에서 폭력조직 간 충돌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급기야 호주 정부는 '조직폭력배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폭력조직에 가입하기만 해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케빈 러드 총리는 지난 24일 미국 순방길에 "조직폭력배 근절을 위해 필요한 모든 행동과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 정부는 조만간 법무부 주관으로 조직폭력배 소탕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조폭들의 총기난사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빈발하고 있다. 러시아 프라우다지 영문판은 시카고 경찰청 관리들을 인용해 지난해 시카고에서만 조폭 간 총격전으로 최소 450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스웨덴에선 2006년 61건이던 은행강도 사건이 지난해 155건으로 급증했다. 덴마크에서도 마약 관련 범죄로 지난 6개월간 총기사건이 60건이나 발생,3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러시아에선 지난달 복면 강도들이 고속도로에서 현금수송 차량을 습격해 100만달러 이상을 강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제불황이 확산되면서 실업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 조직범죄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 공안부는 최근 "대량 실업 사태로 일자리를 잃은 청년들이 조직범죄로 흡수되면서 마피아 스타일의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며 이들과 연계된 매춘 도박 마약 등의 범죄를 전담할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근 한국에서 적발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건에는 중국 최대 폭력조직인 삼합회가 연계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인도에선 해외에 좋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빈민가의 젊은이들을 유혹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지역으로 마약을 운반시키는 사례가 빈번하다.

실업률 증가를 외국인 탓으로 돌리며 소수인종을 상대로 한 극우파 범죄도 늘고 있다. 독일 일간지 슈피겔지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에선 인종차별주의적 극우파의 범죄가 30%가량 증가했다. 러시아에서 지난 1월 발생한 외국인 대상 테러만도 32차례에 달한다. 이탈리아에선 인도 출신 근로자가 화염테러를 당하는가 하면 헝가리에서는 방화로 집시 가족이 숨지는 사태도 벌어졌다.

일각에선 1930년대 대공황이 나치의 탄생을 가져왔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경제상황 악화에 따른 '제노포비아' 범죄의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