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는 어쭙잖게 민주화 운동에 발을 담갔고 1990년대엔 종단 개혁에 참여하느라 시 창작에 소홀했지만 시에 대한 열정을 잃은 적은 없습니다. 이젠 제 자리로 돌아가 그동안 태우지 못한 창작열을 불태워 보려고 해요. "

불교 조계종에서 승려와 신도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원장으로 5년 동안 일해 온 청화 스님(65)이 오는 24일 퇴임을 앞두고 이렇게 밝혔다. 그는 퇴임에 즈음해 그동안 쓴 시들 중 최근작을 엮은 시집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월간문학 출판부)를 펴내기도 했다. 197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서 <채석장 풍경>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지 31년 만에 처음 펴낸 시집이다.

청화 스님은 1986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1992년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등을 지낸 '운동권 스님'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찰에 가면 춘원 이광수처럼 글을 쓸 수 있겠구나"하고 문학에 꿈을 뒀고 1962년 출가한 후에도 문학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산신각에 담요를 쳐놓고 밤새 습작에 몰두했던 '문청' 출신이다.

"시인이자 수행자로서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어요. 시가 감성적으로만 흐르면 썩거나 곯아버리고 감성이 없으면 무미건조하니까요. 시는 함축을 통한 상징이 묘미인데 감정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음미할 맛이 없고 맥이 빠져 버려요. "

그는 "일체의 언어를 배제하는 선의 입장에서 보면 시도 망상일 뿐이지만 그 망상 또한 현실의 번뇌를 정화하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한다"며 시를 쓰는 일이 수행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시대의 고민과 열망 및 이슈에 바탕한 자신의 관점을 시로 쓴다는 것.그의 시집에 의미를 담은 시들이 많은 것은 이런 까닭이다. 특히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그는 여러모로 든다.

'서 있을 때 보지 못한 보석/쓰러진 눈으로 발견하고 주워 일어선 그날은/온 세상이 보석빛이었다/거기서 깨달았다/눈만 감지 않으면/쓰러지는 것도 새로운 힘이라고.'('새로운 힘' 전문)

'끝끝내 쓰러지지 맙시다//(중략)한때 팔려서/먼 곳의 금빛에만 팔려서/발밑을 보지 못한/그 눈만 크게 뜬다면//왜 없겠습니까/다시 출발하는 얼굴 앞에/저어기 낮닭이 우는 마을/월계관 들고 마중 나온 사람이.'('지금 어려워도' 중)

청화 스님은 "그동안 다른 일로 바빠서 내 삶을 풍족하게 하는 시가 그리웠다"며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유감없이 시작(詩作)에 몰두할 계획"이라며 퇴임 후의 삶을 기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