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에 남기고 간 개인 물품은 거의 없었다. 김 추기경 장례위원회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18일 가톨릭대 성신교정 박물관에서 공개한 유품 대부분은 사제복이나 제구 등 성직과 관련된 물품들이었다. 그마저도 낡고 소박했다.

안경 5점은 예전부터 사용했던 것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둔 것이고 성작(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잔)과 성반(성작의 받침)은 금속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오랜 세월이 얹혀 광택이 사라지고 부분 부분 녹슬었다. 1966년 주교가 됐을 때부터 입었다는 수단(사제복)은 오래되어 왼쪽 가슴 부분에 얼룩이 졌다.

평소 신도나 지인들에게서 받은 소박한 선물들도 눈에 띄었다. 열쇠고리 수십 개,비서 수녀들이 사진에서 김 추기경의 모습을 오려 만든 콜라주 액자,평신도사도직협의회원들이 보내 온 편지와 사진,선물받은 그림 등에서는 '사소한 선물'도 소홀히하지 않고 간직해 온 추기경의 자상한 면모가 엿보였다. 특히 자폐증이 있는 한 신도가 1998년 김 추기경을 그린 크레파스화를 생전 애지중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1968년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에게 받은 팔리움(Pallium;대교구장이나 대주교에게 교황이 선물하는 몸에 두르는 띠),미사를 집전할 때 머리에 쓰는 관인 미트라(Mitra),추기경 임명장,각종 명예박사 학위,상패와 트로피 등도 공개됐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교학부처장을 맡고 있는 변종찬 신부는 "추기경의 지위라면 많은 선물과 화려한 제구를 받게 되지만,추기경님은 예전부터 사용하던 오래되고 소박한 제구만 고집하셨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