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공통된 핵심 유행 코드는 대중적인 중 · 저가 브랜드라는 여과지를 거쳐 일반인도 소화할 수 있도록 순화되니,현명한 소비를 위해 사전에 트렌드를 인지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트렌드를 꿰뚫고 있다고 해서 바로 패셔너블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남성 중 옷장에 매 시즌마다 차곡차곡 새 옷을 쟁여놓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80㎝ 미만의 키에 적당히 뱃살이 잡히는 평범한 남성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감각있게 옷을 입는 비법은 뭘까.
고금을 막론하고 공식 같은 스타일링 팁이 있다. 예를 들어 뚱뚱한 남자에겐 가로 줄무늬보단 세로 스트라이프가,청바지보단 정장 바지가 훨씬 날렵해 보인다. 캐주얼이라면 셔츠를 넣기보다 자연스럽게 빼서 입는 쪽이 시선을 분산시킨다. 키 작은 남성들에겐 폭이 좁은 넥타이를 짧게 매고 되도록 프린트가 작거나 없는 것을 매라는 것도 흔한 '레시피'다. 그렇지만 패션에 관한 전통적인 금기들이 하나둘 깨져가는 요즘,이런 팁들 때문에 미리 제약을 둘 필요는 없다. 그래서 평범한 남성을 위한 새로운 처방전 두 가지를 제시한다.
◆나만의 시그니처 룩을 가져라
만약 한 가지 스타일만 오랜 세월 유지할 수 있다면,적어도 그 스타일에 관해서 만큼은 당신도 패션 고수가 될 수 있다. 이는 사람의 오감 중에서도 시각이 가장 빨리 익숙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무척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개그맨 노홍철의 패션도 이젠 어느 정도 무감각해지지 않았는가.
이러한 시그니처 룩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 예로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는 디자이너로 명성이 자자한 아제딘 알라이아는 평생 중국 인민복인 '마오 재킷'만 입고 다닌다. 또 키도 작고 뚱뚱하기까지 한 '랑방'의 디자이너 앨버 엘바즈는 보타이와 짧은 재킷을 이용해 귀여운 스타일을 보여준다. 칼 라거펠트의 블랙 수트나 앙드레 김의 화이트 룩처럼 일가를 이룬 대가들도 시그니처 룩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다.
아무리 패션지에서 '이번 시즌엔 반드시 좁은 라펠의 재킷을 입으라!'고 떠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이나 칼라 재킷만 고집한다고 가정해보자.처음엔 다소 의아해하던 주위 사람들도 차츰 차이나 칼라를 당신의 시그니처 룩으로 인정할 것이다. 처음엔 차이나 칼라를 어색해하던 당신도 어느덧 가장 멋지게 소화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것이다.
시그니처 룩을 이루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언제나 깅엄체크 셔츠만 입는 것처럼 아이템으로 만들 수 있고,블랙만 고집하는 것처럼 컬러로,혹은 복숭아뼈까지만 오는 다소 짧은 길이의 바지만 입는 것처럼 실루엣으로도 시그니처 룩을 설정할 수 있다. 우선 손쉬운 것부터 시작하자.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시그니처 스타일을 찾아낸다면 역설적으로 당신은 유행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넉넉한 실루엣에 주목하라
최근 수년간 패션 전문가들은 몸에 꼭 맞게 입으라고 남성들에게 '강권'해왔다. 한술 더 떠,꼭 끼게 입어 느끼는 불편함이 멋쟁이 남자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자신의 치수보다 크게 입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대개 어깨선에 치수를 맞추는 게 좋다) 그렇다고 작게 입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실제 스키니 팬츠가 남성 패션의 대세인 것처럼 떠받들여지던 시절에도 대다수 남성이 가장 선호한 것은 정직한 일자 바지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담하건대 무릎 길이의 'H'라인 아우터는,설사 몸의 곡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스타일이 다시 유행한다고 해도 언제나 사랑받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번 프라다의 올 봄 · 여름(S/S) 남성 컬렉션에서 선보인 다소 짧은 스트레이트 핏 팬츠에 넉넉한 실루엣 상의 조합이야말로 가장 유행에 덜 민감하면서도 패셔너블해 보이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컬러는 네이비와 스카이블루,그레이 · 화이트와 블랙 등 기본적인 색상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 월간 '하퍼스 바자' 패션에디터 kimhyeontae@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