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곰국을 끓이면 조심해라.곧 떠난다는 뜻이다. " "애완견 꼭 안고 다녀라.그래야 이사갈 때 따라갈 수 있다. "친구들이 해 주는 이런 말들이 농담인 줄만 알았다. 중견기업 전문경영인으로 돈도 잘 벌고,건강한 데다 누구에게나 인기있는 자신은 예외인 줄 알았던 C사장.그에게 몇 주 전 아내가 한 요구는 충격이었다. 집문서를 내놓으라니.

놀란 건 그였지만 표정은 아내가 더 묘했다. 명의를 바꿔주지 못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럴 듯한 설명도 붙였다. 요즘 유행하는 게 집을 여자 앞으로 해놓는 거다,지난번 종부세 환급에서도 부부 공동명의로 된 경우가 더 유리했다는 등등.

C사장은 마음이 상해 말을 못했다. 다시 얘기를 꺼낼 때마다 '쓸데없는 소리'라며 입을 막았지만 아내는 멈추지 않았다. 3주째 일요일,마침내 아내가 눈물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흘리는 슬픈 곡조에 붙은 가사는 이랬다. "몇 년있다 은퇴하면 집 하나 달랑 남는데,그거라도 지켜야 살아 간다 말이다. 젊은 여자 잘못 만나 끝장나고 싶으냐,마누라 명의로 하자는데 무슨 말이 많은가. "

그는 결국 항복했다. 금방 방긋 웃는 아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알고보니 아내의 갑작스런 결심은 주간지 기사로부터 시작됐다. 70대 부자 노인이 젊은 여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바람에 전 재산을 날렸다는.

서러워라.청춘을 회사에 바치고,그렇게 번 돈을 집에 가져다줬는데 이런 푸대접을 받다니.C사장은 그래도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가족을 위해 '보험'을 드는 셈이니 고마운 거지.다 바쁘다는 핑계로 돈 갖다주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내가 문제야."

사람에게는 네 가지 모습이 있다. 사회인,직장인,가정인,개인.그 가운데 직장인으로서만 살아왔던 대표적인 인물들이 한국의 경영자다. 사회인으로서 봉사도 하고,개인으로서 취미도 갖는 건 나중에 할 수 있다고 치자.가정인으로서 그동안 깎인 점수는 만회할 길이 없다. 오로지 비즈니스만 생각하는 '회사 인간',그 마지막 세대가 한국의 50대 남자들이다. 긴 노후를 더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그들이 가정을 지키려는 아내와 벌이는 '장미의 전쟁'은 지금도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C사장과 최근 만난 자리엔 공직자를 포함해 모두 6명이 더 있었다. 그들 중 3명이 '와이프 집'에 산다고 했다. '뭐가 이상하냐?'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