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했다. "세상이 엉망이구나. 차라리 뗏목을 타고 동해 바다나 건너가 버릴까? 그때 유(由)야,너는 나를 따라 나서겠지?" 자로(子路ㆍ由는 이름)는 이 말을 듣고 신이 났다. 공자가 다시 말했다. "유는 역시 용감한 점에선 나보다 낫구나. 그런데 유야,뗏목 나무는 어떻게 구하지?" (<논어 공야장>)

세상 돌아가는 꼴에 실망한 선생이 농반진반 던진 말에 제자가 덥석 걸려들자 "정신 차려라,이놈아" 하며 죽비를 한 대 날리는 장면이다.

이름이 전하는 70여명의 공자 제자 가운데 자로만큼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없다. 문하생 중 최연장자이며 순박한 의리와 엉뚱함으로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서유기'의 손오공, '수호전'의 노지심 못지않은 감초 조연급이다. 특히 나이 차가 아홉 살밖에 나지 않는 선생과 제자 사이에 벌어지는 짓궂지만 애정이 듬뿍 담긴 에피소드는 엄숙한 경전 '논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힘이기도 하다.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자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이 전쟁터에 가실 때는 회와 저 중에 누구를 데려가시렵니까?" 공자가 말했다.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다 죽어도 후회 않을 너 같은 놈은 안 쓸 것이다. " (<논어 술이>)

공자가 병들자 자로가 기도를 청했다. "병에 효험 있는 기도가 있는가?" "네,천지신명에게 빌면 됩니다. " 공자가 말했다. "일없다. 그런 기도라면 난 벌써 오래 전부터 해 왔다. " (<논어 술이>)

자로는 본래 동네 건달이었다. '공자가어'는 시건방진 도학 선생을 골려주려고 찾아간 자로와 공자의 첫 대면을 이렇게 전한다.

공자: 너는 무엇을 좋아하느냐?

자로: 긴 칼입니다.

공자: 그걸 물은 게 아니다. 칼 쓰는 재주에 학문을 더하면 아무도 너를 이길 수 없을 것 아니냐.

자로: 대나무는 절로 곧아서 훌륭한 무기가 되는 법,왜 학문을 해야 합니까.

공자: 그건 이렇다. 화살 한 쪽에 깃을,다른 한 쪽에 촉을 박는다면 더 훌륭하지 않겠느냐.

이 말 한마디에 자로는 제자가 됐고,다섯 가지 가르침(强勞忠信廉)을 '몸이 마치도록' 힘써 실행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한번 발심(發心)한 제자는 스펀지처럼 선생의 말씀을 족족 빨아들였고,'하나를 미처 실행하기도 전에 새 가르침을 줄까 봐 두려워할' 정도로 용맹정진했다.

자로는 훗날 학문하는 자세의 귀감이 됐다. 맹자는 '사람들이 잘못을 지적하면 오히려 기뻐했다'고 그를 칭송했고,1500년 뒤 북송에서 태동한 신유학은 '성인은 배워서 이를 수 있다(學爲聖人)'는 슬로건의 실천 강령으로 자로를 내세웠다.

'자로는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을 기뻐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름이 다함이 없다.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누가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숨기고 의원을 기피해 자기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如護疾而忌醫,寧滅其身而無悟也) 안타까운 일이다. '

신유학의 개조 주돈이가 '자로처럼 학문하라'고 권한 '통서(通書)'의 문장이 요즘 말썽이다. 교수신문이 국민의 충고에 귀닫은 정치권을 겨냥해 '호질기의(護疾忌醫)'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탓이다.

야당은 마이동풍(馬耳東風) 정치를 경고한 것이라고 하고,여당은 목불견첩(目不見睫)이라며 맞받아친다. 한 가지 허물을 지적하면 두 가지 허물을 쌓는 꼴이니,자못 그 병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허나 국회를 전쟁터로 착각하는 살벌함보다는 이렇게라도 인문학 소양을 겨루는 편이 낫다고 위안도 해 본다.

편집위원ㆍ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