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온 그룹들이 자금난 등에 시달린 끝에 인수 기업의 재매각을 잇달아 추진,국내 M&A시장에도 상당한 충격파가 밀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제 기업들이 M&A 전략을 원점에서 재점검하고 시장 추이를 세밀하게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단순히 덩치를 부풀리기 위한 '묻지마 M&A'전략으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모기업 경영까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용기 연구위원은 "최근 표출되는 불안심리는 현금창출 능력이 부족한 기업들이 덩치 큰 매물에 달려드는데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진단한 뒤 "자신의 성장 전략에 맞는 매물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집착을 버려라

M&A가 여의치 않을 때는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무리한 M&A 추진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들이기 십상이다. 지난 1994년 총수가 직접 나서 지휘한 해태의 인켈 인수는 3년 뒤 부도-법정관리 사태로 이어졌다. 1999년 정부의 강압에 의해 합병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는 이듬해 무려 5조원의 적자를 내며 무너졌다. 재계에서 M&A 수완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임종욱 대한전선 부회장의 지론은 "언제나 떨어질 각오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04년 이후 쌍방울 무주리조트 명지건설 남광토건 등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워왔지만 극동건설과 진로 인수전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임 부회장은 "낙찰을 받지 못했다고 실망한 적은 없다"며 "현금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더 좋은 매물들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실행전략부터 세워라

성공적인 M&A를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와 실행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1995년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되지 않았던 아르셀로 미탈은 성공적인 M&A를 통해 10여년 만에 세계 최대의 철강업체로 발돋움했다. 미탈은 한방에 업계 판도를 바꾸는 '메가 딜'에도 능숙하지만,사실은 군소 M&A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다. 미탈은 외국의 크고 작은 제철소 설비를 인수하면서 해당 기업의 경영 노하우와 기술력을 효과적으로 습득했다. 이 회사는 책임과 권한을 이양받은 M&A팀을 두고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팀장을 맡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물 물색에서부터 인수협상에 이르기까지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행이 가능하고 외부 전문가 집단과의 네트워크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차입금/에비타 5배 이내로

최근 '자금난 괴담'에 시달린 기업들의 공통점은 M&A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차입금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흔히 자금 운용의 리스크를 재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잣대는 차입금을 에비타(EBITDA,세금.이자.감가상각 차감 전 이익)로 나눈 비율이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 국면에서 이 비율이 5배를 넘어갈 경우 채무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기고 신인도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금호아시아나 두산 등이 최근 성사시킨 M&A의 경우 차입금이 에비타의 7∼10배에 달했다.

기업구조조정 업무에 정통한 산업은행의 최익종 공공투자본부장은 "그동안 국내외 유동성이 좋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차입금/에비타 비율을 다소 느슨하게 운용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기업은 최악의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과욕을 부려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