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위압하고 군림하고 당당할 권리를 가져서 매혹적인 여성."(심윤경)

"당대를 힘껏 통과하면서 힘에 대한 열망을 넘어 포용의 의지도 갖추어가는 인물."(김선우)

"시대를 통째로 조망하면서도 간장 종지에 무엇이 담겼는지 사소한 미시사와 소소한 감정까지 보여주는 소설."(정이현)

대하소설 ≪토지≫와 옹골찬 주인공 서희에 대한 여성작가 3명의 생각이다. 28일과 29일 고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경상남도 통영에서 열린 '2008 예스24 문학캠프'에 참가한 작가 김선우씨(38),심윤경씨(36),정이현씨(36)는 ≪토지≫와 박경리 선생에 대한 생각,여성작가가 그리는 소설 속 여성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고대(심윤경 ≪서라벌 사람들≫),근대(김선우 ≪나는 춤이다≫),현대(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의 여성을 다룬 작품을 발표하며 남성 중심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았던 세 작가는 ≪토지≫의 서희라는 인물과 자신들의 작품 속 인물들이 가부장제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정씨는 "서희는 가부장제에 희생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로,≪달콤한 나의 도시≫의 은수도 여전히 잔존하는 가부장제를 살아내고 있다"며 "복수심이 가득한 처자에서 세월을 거치며 넉넉하게 변하는 서희처럼,내 소설 속 주인공들도 성장이 어려운 현대를 살아가며 자의든 타의든 성장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가부장제 사회를 가부장이 되어 통과하려고 했던 서희,힘이 없기 때문에 힘을 가지고 싶어했던 서희는 문학적 매력이 있는 인물"이라며 "≪나는 춤이다≫의 무용가 최승희는 일본 제국주의라고 하는 또 다른 가부장적 폭력을 아름다움으로 넘어서려 했던 존재"라고 설명했다. ≪서라벌 사람들≫에서 신라시대를 거침없이 살아갔던 여성을 보여준 심씨는 "서희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조화를 이루는,탁월하고 생명력이 강한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세 작가는 박경리 선생과 맺은 인연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봄 토지문학관에서 작품을 구상했다는 김씨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밭을 일구며 깻잎을 따고 쑥갓을 솎아 문학관에 기거하던 후배 작가들에게 줄 반찬을 만드시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대작가가 나이를 먹는 방식과 아름다워지는 방법을 손수 보여주셨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입시를 앞두고 ≪토지≫를 읽으면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수험생활을 보냈다는 심씨는 "≪토지≫는 내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불어넣어준 작품"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70%를 쓴다 싶을 만큼 중노동인데,이런 과정을 도와주시며 후배들을 후원한 박경리 선생이 존경스럽다"며 "≪토지≫의 양과 질을 보면 작가의 희생과 열정,강한 신념에 압도당한다"고 전했다.

통영=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