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수레가 요란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 50~60곳의 공기업을 민영화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11일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절반(26곳)도 안 되는 것으로 결론 났다. 2~3차 발표가 남아 있다지만 각각 통폐합 기업(2차)과 논란이 남아 있는 기업(3차)을 중심으로 한다는 방침이어서 민영화 기업 수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부풀려진 민영화 공기업 수

1차 발표에서 공기업 개혁의 최대 관심사인 민영화 대상 기업 수는 26개였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2차관은 "확실히 방향이 정해진 것들은 오늘 대부분 발표했고 앞으로 민영화 대상 기업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나마 26개라는 숫자 역시 부풀려진 것이다. 이날 발표를 보면 정부는 △민영화(26곳) △지분 매각(1곳) △통폐합(2곳) △구조조정(12곳) 등을 모두 합쳐서 '선진화'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표현했다. 그 때문에 1차 공기업 개혁 대상 기관의 전체 규모는 41곳,민영화 대상 기업 수도 26곳으로 상당히 많은 수의 공기업을 민영화 또는 구조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 보면 '알맹이'는 다 빠지고 전체적으로 부실해진 안이라는 평가다.

우선 26곳 중 공적자금 투입 기업 14곳은 원래부터 민간 기업이었던 것을 특수한 사정(외환위기 등)으로 정부가 지분을 떠안은 경우로 당연히 민간에 돌려 줘야 할 기업들이다.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역시 이미 금융위원회가 지난 6월 민영화 방침을 밝혔던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모아 발표한 것이다.

이것 저것 다 빼고 나면 새롭게 등장한 게 뉴서울컨트리클럽 한국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건설관리공사 경북관광개발공사 등 5곳이다. 결국 '힘없고 빽없는' 몇몇 공기업만 상징적으로 도마 위에 올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공부문 개혁 추진 동력 잃어

지난 4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주도로 만들어진 공기업 개혁안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당시만 해도 한국가스공사에 대해 경쟁 도입 후 민영화 방안이 거론된 것을 비롯 50~60개가량의 공기업이 민영화 대상으로 떠오르는 등 공공 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예고됐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촉발된 '촛불 시위'에 발목이 잡혀 그 내용을 점점 축소시키고 발표 시기도 계속 늦추면서부터 민영화가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란 우려가 터져 나왔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에너지 부문이나 사회간접자본(SOC) 부문 등 덩치가 크고 민감한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 논의를 완전히 중단하고 논란이 없는 '편한 길'을 선택했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 이번 정권에서도 방만한 공공 부문에 대한 수술은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앞으로도 '산 넘어 산'

정부는 오는 14일 주택공사와 토지공사 통합 방안,18일에는 관광공사 기능조정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각각 개최키로 했다. 1차에서 발표되지 않은 나머지 공기업에 대한 처분 방침은 8월 말께 2차 발표,9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로 예정된 3차 발표에서 순차적으로 밝혀 나갈 방침이다.

앞으로의 공기업 개혁 방안은 이날 1차 발표에 대한 국민 여론과 노조 지방자치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의 움직임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오연천 공기업선진화추진위원장(서울대 교수)은 "1차 발표는 상대적으로 정책 판단이 쉬운 공기업을 대상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공-토공 통폐합에 반대하고 있는 토공 노조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토론회와 국회 논의 과정도 '산 넘어 산'이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