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수천억원대의 자산을 보유한 강남 아줌마들은 사실 재산을 폭발적으로 불리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 재산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그 이후부터는 삶의 질이 그다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 그 기준이 되는 금액을 총자산 기준 50억원 정도로 보는데,재산규모가 이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재산을 '불리는' 데보다 '지키는' 데 더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보다는 세테크 등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간다.

연령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30,40대에는 공격적인 투자에 집중하다가 50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지키는 쪽으로 투자의 방향을 트는 '큰 손'들이 많다.

그렇다면 60대가 넘어서면 어떻게 될까.

이때부터는 자신이 평생 모은 부(富)를 다음 세대로 안전하게 이전시키는 상속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대한민국 부자들의 경우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자식들에게 상속 내용 등에 대해 일절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편이어서 지금까지는 상속과정이 별다른 준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편이었다.

이런 경우 부모를 떠나보낸 자식들이 재산을 물려받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70대에 막 접어든 나이에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 운동을 하다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한 고객이 있었다.

이 고객은 평소 '너무 이른 나이에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늘그막에 자식들에게 홀대를 받는다'는 사고를 갖고 있던 사람이어서 상속을 전혀 준비하지 않다가 변을 당했다.

문제는 이 고객이 사망한 후 남은 가족들이 내야할 상속세가 전체 자산의 절반인 100억원에 달했다는 것.이 고객의 경우 자산 포트폴리오가 금융자산 절반,부동산 절반 이런 식으로 구성이 돼 있었는데 부동산의 경우 현금화가 쉽지 않았다.

또 향후 상승 가능성이 점쳐져 부동산으로 물납하는 식으로는 세금 납부는 어려웠다.

때문에 금융자산 거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물고 지금은 가족들이 '덩치'가 큰 부동산 하나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부동산 하나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보니 당장 현금화하기도 쉽지 않고,더구나 부모 재산의 절반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이 가족은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돼 있는 상황이다.

자신의 재산을 자식들에게 일찍 물려주는 게 터부시 돼 있는 한국의 상속문화상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나마 요즘은 상속에 대한 한국 부자들의 마인드도 상당히 개방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행스럽다.

50대에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고객의 경우 50대 초반에 이미 수백억원에 달하는 재산의 상당액을 증여세로 내고 배우자와 자녀에게 증여했다.

수개월 동안 준비하고 검토해 이뤄진 작업이었기 때문에 증여세 납부 금액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재산증여 이후에 A씨가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포트폴리오를 가족 단위별로 나눠서 본인 앞으로 돼 있는 자산은 보수적으로,자식 앞으로 된 자산은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식이다.

자녀명의로 된 자산만 놓고 보면 매우 비정상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이 될 수도 있지만,가족 전체로 살펴보면 정상적인 구성이 되는 셈이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상속 준비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특히 요즘에는 시중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B) 센터 등에서 가업승계 등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상속을 준비할 수 있다.

물론 더 좋은 방법도 있다.

아예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



알고 지내는 고객 가운데 매출액 수천억원 규모의 중견기업 오너 B씨가 있다.

이제 70대에 접어든 B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주식 100%를 직원들에게 나눠줄 계획을 갖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 또한 전적으로 찬성하고 있으며 이미 실무적인 검토작업도 마무리된 상태다.

직원들의 신분이 종업원에서 주주로 전환되는 셈이다.

"평생 일궈온 기업을 남에게 넘기는 게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B씨는 단호하게 "이 회사는 내가 키운 게 아니라 직원들이 키운 것이기 때문에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답했다.

자녀들에게도 일절 미안한 게 없단다.

"자식들은 이미 충분히 가르쳤기 때문에 자식에게 더 이상 정력을 쏟아붓는 것은 애들을 망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한국의 자산가들이 한번쯤 생각해봄직한 얘기가 아닐까한다.

강우신 기업은행 분당파크뷰지점 PB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