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기부전 치료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정신치료가 사실상 전부였다.성행위 순간의 불감증이나 성무기력증 발기불능 등을 치유하기 위해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파트너와 신뢰를 회복하고 성적 억압에서 해방될 것을 환자들에게 가르쳤다.그러나 정신요법은 심인성 발기부전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으나 단독요법만으로는 효과가 떨어지고 다른 치료와 병행해야만 70%가량의 치료 성공률을 보일 수 있는 것으로 지금의 의학계는 판단하고 있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음경보형물 수술 시대가 열렸다.이 시기엔 당뇨병 등 신체질환에 의한 발기부전을 치료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최음제의 일종인 요힘빈과 지속성 남성 호르몬 제제인 데포테스토스테론을 많이 사용했으나 해결되지 않는 환자가 대다수였다.

이 때문에 생체친화적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보형물을 음경에 집어넣기 시작했다.보형물은 재질과 기능성이 개선돼 지금도 선호하고 있으나 비아그라 등 먹는 발기부전치료제가 나오면서 한물간 치료가 되고 말았다.보형물을 품고 다니는 게 불편하고 여성들이 혐오감을 갖는 데다 수명이 최장 10년에 불과해 고장이 나면 재수술해야 하는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모 대학병원의 수술 대가인 C교수의 경우도 비아그라가 등장한 1998년 이전만 해도 이 수술을 하루에 한두 건 시행했으나 지금은 한 달에 4∼5건 하기도 빠듯하다고 한다.

1980년대 서구에서는 진공 흡입기가 인기를 끌었다.음경을 진공상태에 두면 음경해면체로 혈액이 유입돼 음경이 팽창하는 원리의 치료기다.그러나 서양인과 달리 한국인은 복잡한 사용법 익히기를 귀찮아했고 성행위 직전에 조작함에 따라 전희가 중단되고 음경 뿌리 부분에 밴드를 묶어 통증이 생기고 사정시 쾌감이 떨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1990년대부터는 음경해면체에 혈관확장제를 환자 스스로 주사하는 치료가 이뤄졌다.이로써 수술이나 기구보다 자연스럽게 발기를 유도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뾰족한 주사바늘에 대한 공포감과 통증이 문제였다.

부작용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음경이 1시간 넘게 지속적으로 발기하고 음경해면체가 딱딱하게 섬유화되는 사안이었다.차후 파파베린,펜톨아민,프로스타글란딘E1 등 3종 혼합주사요법이 등장해 이런 부작용을 줄였지만 99%에 가까운 발기성공률에도 불구하고 주사를 사양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1990년대에는 꿈에도 그리던 먹는 발기약 시대가 열렸다.1998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경구용 발기부전 치료제로 시판된 비아그라는 '20세기 최후의 위대한 발명품''세계 최초의 진정한 해피드럭''희망의 푸른 다이아몬드' 등의 격찬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폭발적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이 바람에 요도에 넣는 좌약형 발기부전 치료제 '뮤즈'나 대뇌피질에 발기를 유도하는 신경신호를 전달하는 '유프리마'가 선을 보였다가 각각 사용상의 불편함,효과의 밋밋함 때문에 눈물을 훔치고 시장에서 사라져야 했다.다른 치료법도 사양길을 걸어야 했다.

비아그라가 빅히트를 치자 경쟁 제약사들은 비아그라의 부작용을 줄이고 보다 강한 발기력을 발휘하는 제품을 내놓았다.시알리스 레비트라 자이데나 엠빅스 등이 '포스트 비아그라 시대'를 열어 국내서는 현재 치열한 5파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발기부전 환자의 80∼90%가 먹는 발기부전약으로 치료하고 있다.나머지 10∼20%는 중증 발기부전 환자들이 자가주사를 통해 발기에 성공하는 경우다.수술로 치료하는 비율은 많아야 3%가 넘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인체 생리에 맞게 자연스럽게 발기되는 먹는 약의 장점을 다른 치료법이 뛰어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추세는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