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Focus] 美기업들 회장 '따로' CEO '따로'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회장(이사회 의장)을 겸하지 않는 미국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이런 기업들에선 이사회 의장이 기업 의사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CEO를 견제한다.이 때문에 CEO와 이사회 의장의 '권력 분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CEO와 이사회 의장이 다른 기업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대 기업의 36%를 차지했다.2002년엔 이 비중이 22%에 그쳤다.WSJ는 전통적으로 미국 기업 CEO들이 이사회 의장과 권력을 나눠 갖는 것을 꺼려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라고 지적했다.

CEO와 이사회 의장의 권력 분점이 일어나는 때는 기업의 경영실적이나 재무구조가 악화되는 위기의 순간이 대부분이다.서브프라임 모지기(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퇴진 압력을 받았던 베어스턴스의 CEO 겸 이사회 의장 제임스 케인이 지난 8일 CEO 자리를 내놓고 이사회 의장직만 유지키로 한 것도 이런 사례다.

영국에선 1992년 이래 기업지배구조 개혁이 활발하게 이뤄져 대다수 메이저 기업들이 CEO와 이사회 의장 분리 체제를 갖고 있다.이 체제의 옹호론자들은 이사회 의장이 이사회를 이끌며 기업 경영의 조언자로서 도움을 아끼지 않고 차기 CEO 선임 문제까지 관리함으로써 CEO가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랜드시큐리티스그룹 이사회 의장인 폴 마이너스는 "한 사람이 CEO와 이사회 의장을 모두 맡는 것은 과도한 권력 집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CEO와 이사회 의장 간 권력 투쟁이 기업 경쟁력을 훼손시킬 수 있고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 계통의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CEO가 이사회 의장까지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반박한다.광고회사 인터퍼블릭그룹의 CEO와 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마이클 로스는 "CEO와 이사회 의장을 따로 두는 기업은 사내 명령 계통이 불확실해질 경우 재앙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는 예일대 기업지배구조 연구소인 밀스타인센터가 CEO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이사회 의장직을 수행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다음 달에 개최하고,1999년 출범한 이사회 의장 포럼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는 등 CEO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