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와 엔화 간 연관성이 높아지고 있다.

움직이는 방향은 서로 반대다.

엔화 가치가 오른 날에는 미국 증시가 떨어지고 증시가 상승하면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모습이다.

시장이 요동칠 때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12일(현지시간)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날 미국 증시의 주요 주가지수는 줄줄이 미끄럼을 탔다.

나스닥지수와 S&P 500지수는 각각 1% 이상 빠졌고 다우지수는 3개월 만에 13,000선 아래로 추락했다.

같은 날 엔화는 급등했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109엔대로 올라서며 1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가 지나자 상황은 정확히 거꾸로 전개됐다.

13일 엔화 가치는 달러당 111엔대로 급락(환율은 상승)한 반면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전일 대비 2.46% 뛰었다.

올 들어 두 번째로 큰 상승폭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상관관계를 푸는 키워드로 '엔 캐리 트레이드'를 꼽았다.

초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지역의 통화나 주식 등을 사는 거래가 확산된 것이 엔화와 미 증시를 밀접하게 만든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모든 '캐리 트레이드'는 시장의 변동성을 싫어한다.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인 만큼 금융시장이 불안할 땐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줄어든다.

엔화를 이용한 캐리 트레이드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이 흔들리고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높아지면 빌렸던 엔화를 갚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고금리 통화를 팔고 엔화를 사는 거래가 늘어난다.

엔화를 강세로 밀어올리는 요인이다.

최근 미국 증시가 휘청거릴 때마다 엔화 가치가 높아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반대로 미국 경제가 안정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면 미 증시가 상승세를 타는 반면 엔화 가치는 하락한다.

시장의 변동성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한 투자자들이 엔 캐리 트레이드에 다시 나서기 때문이다.

미 증시가 엔 캐리 트레이더들의 주요 투자처 중 하나라는 점도 미 증시 상승세와 엔화 약세 현상이 동시에 반복되는 요인이다.

'엔화 대출 증가→엔화 매도(엔화 약세)→달러 매입→증시 자금유입 증가'의 순환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톤브룩 자산운용의 투자담당 임원인 제롬 애버내티는 "엔화는 시장의 위험회피 성향을 민감하게 반영한다"며 "최근의 엔화 움직임은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탄광의 산소 농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나리아처럼,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캐리 트레이딩 규모가 확대되면서 엔화가 미 증시를 읽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대출) 부실 파문으로 시장이 출렁거린 지난 8월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 확연해졌다.

대형주 중심의 S&P 지수와 엔.달러 그래프는 아예 거울에 비친 형상처럼 판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러나 엔화를 미 증시 투자용 '선행지표'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엔화와 미 증시는 시차를 두고 움직인다.

그나마 시간 간격도 일정치 않다.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선후가 바뀌기도 한다.

엔 캐리 트레이딩 시장에 참여자가 너무 많아 실제 거래 규모를 추측할 수 없다는 것도 약점이다.

'와타나베 부인(해외 투자에 나선 일본 주부들의 별칭)'들의 쌈짓돈을 일일이 추적할 순 없는 노릇이다.

엔화 가치의 변동이 캐리 트레이드에 의한 것인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얘기다.

프랑스계 투자그룹 칼리온의 통화분석가 조나스 툴린은 "엔화와 미 증시 간 상관관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엔화가 미국 증시의 '내일'에 대해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