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걸 LG패션 사장(50)의 남다른 '잠행(潛行)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수행 비서도 없이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 들고 미국 일본 유럽 등지를 단독으로 출장,해외 패션계의 최신 트렌드를 살핀 뒤 임직원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지난 8월엔 2주간의 여름 휴가를 일본 도쿄에서 홀로 보냈고,이달 15일부터 열흘 동안은 뉴욕에 '나홀로 출장'을 다녀왔다.

수행 비서가 있으면 미리 짜여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게 돼 소비자 마음을 엿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 사장이 뉴욕 잠행을 마치고 첫 출근한 지난 25일,임원회의는 어김없이 구 사장이 보고 느낀 글로벌 패션 현장에 대한 소감으로 시작했다.

"미국의 애버크럼비(Abercrombie)처럼 우리도 매장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를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꾸며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인테리어가 판매자 위주로 짜인 측면이 많았어요.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버크럼비는 미국의 대표적 남성 캐주얼 브랜드다.

어두우면서도 어딘가 공격적인 느낌의 인테리어,귀가 멍멍할 정도로 강하게 울려대는 음악과 '근육맨'들의 대형 사진,잘생긴 남자 점원 등이 매장의 특징이다.

지난 8월 도쿄 출장 후엔 백화점 영업 담당자들이 구 사장으로부터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일본 백화점들이 저마다 메가숍(mega shop) 형태로 가고 있더군요.

앞으로 해외 진출을 위해선 이 같은 글로벌 백화점 업계의 경향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격식을 따지지 않는 구 사장의 '잠행 경영'은 매주 한 번씩 전국의 LG패션 매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LG패션 관계자는 "수입 명품 브랜드들에 대한 경험이 많은 만큼 마에스트로,라퓨마 등 LG패션의 주요 브랜드들을 이것저것 입어보고 개선점을 말해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제품의 질과 브랜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암행'에 나서는 구 사장이지만 판로 확보에서만큼은 공격적이다.

현재 국내 매장 수는 작년 말에 비해 12.5% 증가한 160개 점포로 늘어났다.

구 사장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고(故) 구자승씨의 장남으로 동생 본진씨(43ㆍ액세서리사업부장ㆍ상무)와 함께 지난해 11월 초 LG상사에서 분할된 LG패션을 이끌고 있다.

미국 회계법인 쿠퍼스 앤드 라이브랜드 근무를 시작으로 LG증권 회장실 재무팀,LG전자,LG산전(현 LS산전) 등 계열사를 두루 거치면서 최고경영자 수업을 받았다.

2004년 LG상사 패션 부문장을 맡으면서 패션업계에 발을 디뎠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