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처는 지난 4월 공공기관운영법 시행을 앞두고 583개 공공성 기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거쳐 법 적용 대상 298개 공공기관을 선정,△공기업(24개) △준정부기관(78개) △기타 공공기관(196개) 등 3가지로 분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획처는 당초 입장을 번복하거나 지정 내용을 바꾸는 등 원칙을 스스로 뒤집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획처는 대한체육회의 경우 4월2일 발표 때는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준정부기관'으로 분류시켰다.
대한체육회는 정부로부터 전체 예산의 95%를 지원받아 정부사업을 위탁집행하기 때문에 인사권도 정부가 행사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열흘도 안돼 이 결정은 번복됐다.
현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알려진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이 "이번 조치로 체육계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됐다"며 "앞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 투쟁해 나가겠다"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난처해진 기획처는 4월11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대한체육회를 인사자율권을 가진 '기타 공공기관'으로 재분류시켰다.
기타 공공기관은 경영정보를 공시하고 고객만족도 조사만 하면 되는 기관이다.
기획처는 당시 "정부가 대한체육회 인사에 개입하게 되면 체육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을 위반,최악의 경우 IOC 회원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으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KBS의 경우는 공기업 개혁의 주체인 기획처가 과연 원칙이나 의지가 있느냐는 비판까지 받았던 케이스.기획처는 당초 KBS를 다른 기관들과 함께 반드시 공공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국회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내세우며 지정 제외를 요구했고 일부 의원들은 KBS 문제가 해결 안되면 공공기관운영법 자체 통과도 어렵다고 협박했다.
장병완 기획처 장관은 이 때문에 "KBS를 공공기관 지정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이 입장은 그러나 청와대의 반대에 부딪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KBS가 공공기관법 적용 대상이 되는 것이 언론의 자유.독립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지적한 것.난처해진 장 장관은 하루 만에 다시 "KBS를 공공기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지나치다"며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그러나 결론은 '지정 유보'였다.
정부 관계자들은 대선과 총선 등 정치 일정을 앞둔 시점에서 공영방송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기류가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기획처는 이 밖에도 EBS 한국은행 증권선물거래소 등 주요 공공기관들에 대해서도 기관 특성이나 근거 법령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지정을 유보시키는 결론을 내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공기업 개혁도 좋고 정의도 좋지만 머리 좋은 관료들이 무리수를 두겠느냐"며 "민영화하지 않고 관료들이 주체가 돼서 벌이는 공기업 개혁은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