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서 서성거리던 바람이 가끔씩 책장을 넘긴다.
길고 지루하던 산문(散文)의 여름날도
책장을 넘기듯 고요하게 익어가고
오구나무 가지 사이에
투명한 매미의 허물이 붙어 있다.
소리 하나로 여름을 휘어잡던
눈과 배와 뒷다리의 힘,
저 솜털의 미세한 촉수까지도
생생하게 붙들고 있다.
매미의 허물 속으로 입김을 불어넣어 주면
다시 한 번 여름을 공명통처럼 부풀려 놓을 것만 같다.
한 떼의 불량한 바람이 공원을 지나고
내 머리 위로 뚝 떨어지는
저 텅 빈 기호 하나,
정수리에서부터 등까지 북 내려 그은
예리한 저 상처.-김나영 '여름의 문장'전문
여름은 산문인 게 맞다.
후끈한 바람이라도 불어주길 기다리다 보면 산문중에도 지독히 지루한 산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미는 어떤가.
폭염에 딱 맞는 목청으로,평생을 단 며칠에 집약해 치열하게 울어젖힌다.
짧은 생을 너무 당당하게 살아내기에 오히려 슬퍼보인다.
시인은 여름이 익어간다고 썼다.
익어간다는 것은 정점을 지났다는 뜻이다.
텅 빈 기호 하나가 머리 위로 뚝 떨어지고….지겨운 여름이지만 떠나간다니 한편으론 서운하다.
어떻든 모든 이별은 쓸쓸하니까.
미진하고 부족한 채로 또 한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