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여학생으로 처음 한국과학기술원(KAIST)학부를 수석 졸업한 김주리씨(38)가 이번에는 한국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최고 이공계 대학인 미국 MIT 수학과의 종신교수(테뉴어)로 임용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MIT는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김 교수를 영입해 수학과 종신교수로 최근 임명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대학은 김 교수의 임용 배경에 대해 "김 교수가 세계 수학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로 꼽히는 '힐버트의 23개 난제' 중 9번째인 'P-adic군(群)'을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앞서 김 교수는 지난해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호 대칭적 이론'을 발표,세계 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KAIST 관계자는 "MIT가 외부 대학에 재직 중인 김 교수에게 내부의 교수들도 합격률이 30~40%에 불과한 종신교수직을 부여한 것은 상호 대칭적 이론의 학술적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MIT 내부를 비롯해 미국 학회에서 김 교수의 이번 종신교수 임용에 대해 '파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KAIST 관계자는 전했다. 김 교수가 바로 여성·소수인종·타대학출신이라는 세 가지 핸디캡을 모두 뛰어넘은 까닭이다. MIT는 그동안 종신교수직을 부여할 때 이러한 핸디캡을 배제하려는 노력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적잖이 받아 왔다는 것.

김 교수는 KAIST 학부를 졸업한 뒤 곧바로 미국 예일대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1997년 28세의 나이에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인 1998년부터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후 과정(포스트닥)을 하고 1999년에 미국 미시간대에서 조교수로 교수생활을 시작했으며 2005년 시카고 일리노이대로 옮겼다.

김 교수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수학을 한 번도 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연구를 쉬어 본 적이 없다"고 밝히고 "항상 처음이고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KAIST 학부시절 은사인 구자경 KAIST 교수는 "김 교수는 학부시절 직관력과 논리력이 뛰어나 수학계에서 두드러진 공적을 낼 것으로 일찍부터 기대를 모았다"고 말했다.

한편 MIT에는 한국인 출신으로 현재 윤재수 전기공학과 교수와 이혜승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종신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1975년 40세에 한국인 최초로 MIT 기계공학과 종신교수로 임용돼 31년간 재직했었다.

오춘호 기자 ohchoon@hankyung.com